연구실 벽면에 노트북만 한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학생들은 보고도 대부분 무심히 지나친다. 그럴 수밖에 없다. 1970년대 청춘을 사로잡았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클래식'으로 인정되지만 요즈음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쩌다 아는 듯한 사람이 있으면 무척 반갑다. 잠시나마 금빛으로 빛났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극장 간판 그림을 보고 충동적으로 본 영화다. 웃도리를 벗어젖힌 채 요트 키를 잡고 있던 알랭 들롱이 엄청 멋져 보였다.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극장 구석에 연탄난로가 있었지만 온기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린 손을 비벼가며 본 그날의 영화는 내 십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태양은 가득히', 르네 클레망 감독이다. 가난한 청년 톰 리플리가 친구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거금을 받고 '이탈리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을 미국에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멜랑콜리한 니노 로타의 음악과 함께 야망을 위해 몸부림치는 고통스러운 청춘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1999년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미스 리플리'라는 TV 드라마까지 국내에 등장할 정도로 영화의 여운은 길었다.
영화에 '필이 꽂힌' 그날, 나는 어린 나이에 엉뚱한 맹세를 한다. 주인공이 파국을 맞았던 이탈리아 소렌토 해변을 꼭 찾겠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연전에 홀로 찾은 소렌토는 감미로웠다. "아름다운 그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카레라스의 음성이 들려온다. 음악 시간에 배운 '돌아오라 소렌토로'다. 만감이 교차했다. 십대의 꿈을 중년이 되어 이룬 것이다.
설날, 고향을 찾은 김에 유치찬란했던 사춘기를 함께한 그날의 영화관을 찾았다. 극장 이름으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아카데미극장. 그러나 흔적조차 없다. 문득 목이 메어 온다. 나를 사로잡았던 알랭 들롱도 늙었고 그를 좋아하던 소년의 귀밑에도 서리가 내렸다. 세월은 너무 빨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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