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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6] '생태' 개념의 남용

바람아님 2013. 9. 8. 10:10

(출처-조선일보 2009.12.0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년 전 우리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교목림을 떠나 초원으로 나오던 시절을 상상해보자. 아직 확실하게 직립하지 못하여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취한 채 관목과 풀숲 사이로 무서운 동물들이 다가오고 있지 않나 늘 살피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크고 무서운 동물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게 되었고, 차츰 보다 강력한 무기를 만들면서 급기야는 거꾸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그들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다음에는 작심하고 세계 각처에서 대대적이고 조직적으로 그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우리의 행동 뒤에는 크고 무서운 동물은 제거해도 우리 삶에 도움이 되면 됐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일단 '신의 괴물'로 누명을 뒤집어쓰면 참으로 벗기 어렵다. 과수원에 피해를 주고 누전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우리 조상 대대로 사랑을 받던 까치도 환경부로부터 유해조수라는 선고를 받고 난 다음에는 너무도 비참하게 총탄 세례를 받고 있다.

바야흐로 멧돼지가 사형선고를 받을 즈음이다. 일부 농가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증거만으로 일방적인 선고를 내리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까치가 멀쩡한 나무를 마다하고 일부러 전봇대에 둥지를 틀겠는가? 그들이 둥지를 틀 수 있는 나무들을 우리가 죄다 베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봇대에라도 둥지를 트는 것이다. 멧돼지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 선한 신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멧돼지같이 크고 무서운 동물을 만드셨을까? 이 질문은 사실 신이 왜 우리를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모든 크고 흉측한 동물들을 포함하여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에게 우리 인간은 가장 무섭고 잔인한 짐승이다.

MBC의 새 코너 '헌터스'가 멧돼지와 인간의 '공존'을 내세우는데, 헌팅과 공존은 애당초 모순되는 개념이라서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걱정스럽다. 요즘 너도나도 생태의 개념을 너무 남용하고 있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최정예 스타군단이 나섰다!"고 하니 이 생태학자, 앞으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