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27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역사가 루이스 멈포드에 의하면 로마의 공중목욕탕은 단순히 하루 일과 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장소가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지로서 로마인이란 누구인지 규정하는 일상적인 의식의 장소"였다. 비유하자면 로마의 목욕탕은 현대 미국의 쇼핑센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
로마인들에게는 하루 일이 끝나면 목욕탕에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데 이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입장객은 제일 먼저 기름실(unctuarium)에서 몸에 기름을 바르고 여러 체육 시설 중 한 곳에 가서 운동을 했다. 그 후 고온욕실(caldarium)이나 한증실(sudatorium·우리 온돌과 비슷한 방식으로 아궁이에 불을 땠다)에서 목욕을 하는데, 당시는 목욕 비누를 사용하지 않던 때라 로마인들은 올리브기름을 몸에 바른 후 스트리질(strigil)이라고 불리는 휜 모양의 금속 도구를 이용해서 때를 벗겼다.
다음에는 온탕인 미온욕실(tepidarium)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며 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냉수욕실(frigidarium)에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장에서 헤엄치고는 마지막으로 기름과 향을 몸에 발랐다. 이러는 동안 간식과 포도주를 즐기고, 독서실에 있는 책을 읽기도 하고, 마사지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술에 취해 놀거나 사랑을 나누었다.
어떤 목욕탕에서는 남녀가 함께 목욕을 했는데, 계속 금지 명령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거꾸로 이런 행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에는 공짜로부터 유료까지 여러 종류의 목욕탕이 있어서 모든 계층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매일 사회적이면서 위생적인 목욕의식을 치름으로써 그들의 로마적인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이것이 전성기 로마의 모습이다. 그 배후에는 로마라는 대도시를 비롯해서 제국 각지의 중소도시, 대규모 장원(莊園) 등에서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물을 어떻게 공급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대형 수로와 수도관 네트워크는 로마 문명을 지탱하는 핵심 시설이었다. 로마 문명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때에는 이런 급수 시스템이 잘 운영되었지만, 쇠퇴기에 들어서자 물이 끊어지고 모든 장대한 시설들이 폐허로 변했다. 문명의 핵심은 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이미지)
(그리스/로마 공중목욕탕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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