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20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패린턴 힐은 1942년에 캘리포니아 주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살인강도죄를 범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집행 전날, 샌퀜틴 교도소 소장인 클린턴 더피는 혹시 사형수의 마지막 부탁이 있으면 들어주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던 힐이 어렵게 끄집어낸 말은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라는 곡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가 강도짓을 한 후 경찰에 쫓기다가 한 야외음악당 곁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때 이 곡이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멋진 음악이 연주되었지만, 그는 미처 그 곡을 다 듣지 못하고 경찰에 쫓겨 도망가야 했다.
소장은 교도소 내의 모든 레코드판을 찾아보았지만 공교롭게도 요한 슈트라우스의 이 왈츠 곡은 없었다. 시내의 모든 음반 가게는 이미 밤이 깊어 문을 닫은 뒤였고, 소장의 친구들, 교도소 간수와 직원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그 판만은 없었다. 밤 12시 반이 되어 이제 레코드판을 구할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의 머리에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법 실력이 좋은 복역수 악단이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연주를 녹음할 기계도 가지고 있었다. 무기수인 악장은 소장의 부탁을 받고 오케스트라 단원인 죄수들을 모두 깨워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날이 새면 세상을 하직하는 친구가 있다네. 오늘 밤 그 친구를 위해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를 연주하는 거야."
악보가 없었으므로 각 파트마다 악장이 직접 휘파람을 불어서 가르쳐 주어야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열심히 연습한 후 드디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 레코드판이 완성되었다. 소장은 한밤중에 그 판을 들고 사형수 격리실로 찾아갔다. 여태 한 번도 남에게 감사 인사 하는 법 없고 뉘우치는 법 없던 그가 진심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고마워했다. 힐은 그 곡을 밤새 듣고, 가스실로 들어가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밖에서 그 곡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른 교도소에 복역 중인 형에게 성경책을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패린턴 힐은 클린턴 더피가 교도소 소장으로 사형을 집행해야 했던 88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 중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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