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05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 16세기 중엽 일본의 조총.
'가이젠(改善)'은 생활의 모든 면을 계속 고쳐나간다는 일본의 생활철학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일본의 제조업에서 끊임없이 결점을 고쳐나가고 낭비 요소를 없애서 생산성을 높이는 활동을 가리킨다. 일본의 가이젠이 오래전부터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했는지는 조총(鳥銃)의 개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1543년에 포르투갈의 모험 상인인 페르낭 멘데스 핀투라는 사람이 일본의 규슈 남쪽의 다네가시마라는 섬에 표착해서 그곳 영주에게 화승총을 선물한 것이 일본 최초의 서양식 총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이 총을 열심히 연구하여 똑같이 복제하는 데에 성공했고, 순식간에 일본 전체에 보급되어서 16세기 중엽이면 일본 전역에 30만 정의 총이 있다고 알려졌다.
일본인들은 이 총의 작은 부분까지 계속 개선해 나갔다. 예컨대 비가 오는 날에도 심지에 불을 붙여서 총을 쏠 수 있도록 해당 부분을 나무 상자로 씌워놓은 것은 작은 요소이지만 일본처럼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때로 이런 것들이 아주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후 이런 가이젠의 누적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나가시노(長篠) 전투(1575)에서 1만명의 소총수들이 23렬로 정렬하여 20초마다 1000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진 오다 노부나가의 부대는 당시 세계 최강의 화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2차대전 이후 일본 기업의 약진을 설명할 때에도 가이젠은 빠짐없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최고위 CEO로부터 조립현장의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가이젠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온 것으로 유명한 도요타가 과도한 원가 절약의 아이디어에 매달리다가 최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역사상 언제나 올바른 것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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