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2.27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서양의 신화적인 바람둥이로는 돈 후안과 카사노바를 들 수 있다.
돈 후안은 17세기 스페인의 신부 출신 작가인 티르소 데 몰리나(1584~1648)의 '돈 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라는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나폴리의 공작부인으로부터 젊은 여자 어부, 심지어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신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을 유혹해서 파멸시킨다. 그러나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오직 정복일 뿐이다.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한 여인을 우롱하여 명예를 빼앗아버리고선 그녀를 버리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사랑을 타락시키고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
돈 후안이 문학적으로 창안된 인물인 데 비해 카사노바(1725~1798년)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훤칠한 용모에 화려한 언변을 가지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여성들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타입이었다. "나의 감각에 기쁨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개발한다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사업이다.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을 알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여성을 사랑했고, 또 여성에게 사랑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카사노바는 열한 살에 첫 성관계를 가진 이후 평생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도 적어도 한 여자를 만나는 동안에는 그녀에게 충실했다. 한마디로 그는 모든 여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탈선이라는 생의 강렬한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그랬기 때문에 돈 후안과 달리 여인들을 떠난 뒤에도 원망을 사지 않았다.
카사노바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루소, 볼테르, 괴테와 교류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프랑스혁명을 전후한 격변의 시대를 지성과 사랑으로 탐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 희대의 지식인 난봉꾼의 육필 일기 원본을 구입한 후 인터넷을 통해 완전히 공개한다고 발표하였다. 불어로 쓰인 총 3700쪽의 카사노바 일기는 유구한 서구의 '사랑의 역사'의 일면을 밝혀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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