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2.1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 17세기의 수술 장면.
마취술이 개발되기 이전인
치과 치료를 받다 보면 마취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6·25 전쟁 당시 마취제가 떨어진 전장에서 부상병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쇠사슬로 묶고 수술을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온몸이 오싹해진다. 실제로 예전의 전장에서는 오늘날의 수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수준의 처치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발사 수준의 외과의가 환자를 '기절'시켜 놓고 팔다리를 자른 후 남은 살을 대충 꿰맨 다음 수술 부위를 불로 지져놓는 방식이었으니 오죽하랴.
사실 고대부터 세계 각 지역에서 통증을 없애고 치료를 하는 여러 전통적인 방식들이 알려져 있었다. 아편이나 각종 허브들, 혹은 알코올이나 향료 물질들이 사용되기도 하고, 침을 이용하기도 했다. '삼국지'에는 관운장이 독화살을 맞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생살을 찢고 뼈에 묻은 독을 칼로 긁어내는 치료를 받는데,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지만 오히려 관운장 자신은 태연하게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화타는 아마도 인도의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 식으로 부분 마취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최초의 근대적인 마취 시술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異論)들이 있지만, 대개 1846년 10월 16일에 윌리엄 모턴이라는 치과의사가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일반병원에서 에테르를 이용하여 한 환자의 종기를 제거한 수술 사례를 든다. 마취(anesthesia, '감각을 없게 한 상태'라는 뜻)라는 말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 이후 여러 의사들의 노력 끝에 오늘날의 안전한 마취법이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이야말로 근대 과학 발전의 고마운 성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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