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1.0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 토요일 이화여대에서 뜻 깊은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화여대가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와 공동주최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긴팔원숭이에 관한 영장류학회를 연 것이다. 우리 연구진이 몇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의 구눙할리문 국립공원에서 수행해온 자바긴팔원숭이(Javan gibbon) 연구의 첫 결실이었다.
최근 영장류학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21세기에 가장 중요해질 연구분야는 단연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분야이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바로 그들인데,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하는 데에는 숱한 윤리적 또는 기술적 제약이 따른다. 직접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 연구들이 영장류 연구에서는 상당 부분 가능하다. 또한 영장류의 뇌를 들여다보면 인간 두뇌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영장류학계에서 독보적인 나라이다. 영장류학의 선두국가인 미국·영국·독일·일본 중에서 실제로 자기 땅에 영장류가 살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원숭이는 온천욕을 즐기고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을 줄 아는 대단히 흥미로운 영장류이다. 그런데 이들과 매우 흡사한 원숭이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충북대학교 박물관에는 그들의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요즘 종종 잠을 설친다. 자바긴팔원숭이 연구는 3년도 채 안 됐건만 벌써 논문거리가 손에 잡힌다. 멸종위기종인 데다 과학계가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국제학술지에 우리의 첫 논문이 실릴 것 같다. 그 논문으로 우리가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영장류의 DNA를 연구한 우리 학자들의 논문은 있었으나 그들의 행동과 생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단군 이래 처음이다. 서울동물원과 에버랜드동물원도 이제 영장류 인지실험을 위한 시설을 갖췄다. 드디어 우리도 세계 영장류학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영장류 연구는 자칫하면 그들과 친해지는 데에도 몇 년씩 걸린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연구재단들은 이런 연구를 지원해주지 않는다. 우리 연구는 지금 아무런 대가를 원하지 않는 어느 뜻 있는 기업인의 도움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혜안에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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