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9.1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세계 최고 '다산의 여왕'으로 기네스북에는 평생 69명의 자식을 낳은 러시아 여인이 기록되어 있다. 모두 27번의 임신에서 두 쌍둥이, 세 쌍둥이는 물론, 심지어는 네 쌍둥이까지 낳으며 이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아이를 한 번이라도 낳아본 여성이라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것이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대단한 기록도 기네스북 그다음 줄에 나오는 남성의 기록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기네스북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걸로 기록한 남자는 모로코의 이스마일 황제이다. 그는 1703년까지 아들 525명과 딸 342명을 합쳐 무려 867명의 자식을 낳은 걸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721년에 700번째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실제 자식 수는 족히 1000명을 넘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성선택(sexual selection) 이론에 따르면 출산 기록에 있어서 암수의 차이가 이처럼 엄청나게 나는 이유는 일단 난자와 정자의 크기 차이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생명체의 초기발생에 필요한 기본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하는 난자는 달랑 수컷의 유전자를 전달하면 그 소임을 다하는 정자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수컷과 잠자리를 같이해도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에는 생리적 한계가 있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상대하는 암컷의 수에 비례하여 엄청난 수의 자식을 얻을 수 있다. 성에 있어서 암컷은 대체로 신중하고 수컷은 헤픈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한 남성이 정자은행에 제공한 정자로 150명의 형제자매가 태어난 사실이 드러나 시끄럽다. 같은 정자 기증자에 의해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를 찾는 온라인 채팅 사이트 '인공수정 형제자매 찾기 센터'를 통해 무려 150명의 유전적 형제자매가 확인된 것이다. "피에 굶주린(The Bloodthirsty)"이란 별명까지 갖고 있던 이스마일 황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그 많은 후궁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을 낳게 했지만, 문제의 이 사내는 단 한 번의 정자 기증으로 잠자리도 같이하지 않은 생면부지 여인네들로부터 무려 150명의 자식을 얻은 것이다. 다윈 선생님도 기가 차 하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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