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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52] 중국의 운하

바람아님 2013. 9. 6. 09:26

(출처-조선일보 2010.04.02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중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 중 하나는 7세기 초에 대운하가 완성된 일이다. 상하이 남쪽의 항구도시 항저우로부터 북쪽의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1500km가 넘는 대운하는 인간이 만든 가장 긴 수로이다. 뉴욕에서 플로리다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이 엄청난 길이를 깊이 3~9m, 최대 9m 폭의 수로로 연결하고, 또 60개의 교량과 24개의 갑문을 설치해서 해발고도의 차이와 수위를 조절했다. 이 수로를 건설하는 데에는 만리장성을 쌓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맨손에 삽 하나로 일을 하다가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운하는 남쪽의 창장(長江)과 북쪽의 황허(黃河)를 연결하는 동시에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경제권인 강남지역과 북부지역을 연결했다. 무엇보다도 강남의 쌀이 북쪽의 수도와 그 너머의 변경지대로 운송되는 것은 중국 전체의 안정적 통치에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중국이 광대한 지역의 다양한 생산 자원들을 통제하고 자체 군사방어 능력을 갖춘 민족국가로 통합되는 데에 대운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이 바다를 포기하고 내륙으로만 향하게 되어서 근대 이후 장기적으로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 역시 대운하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운하는 중국 역사의 성쇠를 가리키는 일종의 지표이다. 운하가 끊어지고 수리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곧 정치적 무능력과 경제적 쇠퇴를 말해주고, 반대로 운하를 연장하는 것은 내부적인 안정과 성장을 의미했다. 창장 본류와 한장(漢江) 사이를 연결하는 67.23㎞의 운하 건설 사업이 얼마 전 개시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현 중국 정부 수립 후 건설되는 최대 규모의 이 운하는 내륙 운송의 활성화 외에도 북부 지방의 물 부족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창장의 물을 북부의 황허(黃河), 화이허(淮河), 하이허(海河) 등 3개 강으로 돌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리 공사인 남수북조(南水北調)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안정 단계에 들어서면 늘 운하와 관련된 치수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