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안보 관계자들이 사드 논란에 대해 ‘이해’를 표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지 정세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그 쪽으로 부터는 계속 긴장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위급 회의체를 가동시켜 사드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현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드는 주한미군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동맹을 방어하는 데 중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는 당시(박근혜 정부에서) 동맹 간 (이미) 최고위급에서 결정된 사안이다”는 등의 언급도 했다.
월초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하고 와서 한 이야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는 지난 1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월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조율했다. 그가 귀국해서 전한 말로는 맥매스터가 “(문 대통령 방미 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설명해줘 고맙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 보도로는 그랬다.
‘이해한다’는 언급의 의미는?
양국의 안보 책임자들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로는 너무 소략한 듯 했지만, 어쨌든 미국과의 심각한 마찰은 면하게 되었나보다 하는 안도감을 주었던 게 사실이다. 역대 안보실장(그래봐야 세 번째 이지만) 가운데 유일한 민간인 출신(한국), 역대 26명의 안보보좌관 가운데 5번째의 군 출신(미국) 간 첫 대좌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셈이다. 외교 전문가의 안보 무대 데뷔가 무난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어서 3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 참석했던 한민구 국장부 장관은 미국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을 만나 사드 관련 대화를 나눴다. 한 장관은 우리 정부의 입장과 방침을 설명했고 매티스는 한국정부의 조치를 ‘이해’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사드 문제에 대해 서로 의기투합했다면 양국 정부 사이에는 보다 진전된 북한 핵 및 미사일 대응책 논의가 오갈 텐데, 언론 보도들이 주는 느낌은 그게 아니다. “이해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정도의 언급이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진전 혹은 변화된 게 없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반입’ 보고에 대해 ‘매우 충격적’이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한 그 때의 기류 그대로다. 하긴 미국에 대해서는 풀이 많이 죽은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사드와 관련한 나의 (진상조사)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정부의 기본 입장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돼야 한다. 특히 환경 영향 평가는 제대로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배치 및 가동이 지연되는 데 대해서는 미국의 양해를 바란다. 국회에서의 논의도 불가피하다.” 이렇게 들린다.
새 정부와 진보진영이 사드 배치에 대해 왜 그처럼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북한 측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친미정부, 친미세력이라는 지난 정권의 이미지를 청산하고 싶어서, △중국에 대한 나름의 성의 표시로, 또 장기적인 외교정책 선회의 한 표징으로, △이른바 ‘자주파’의 압박이 거세거나 아니면 문 대통령 자신이 확고한 ‘자주파’여서 그러는 것일까?
외교 수완으로 북핵 저지될까
지금은 군사적으로 급박한 상황이다. 북한은 모든 종류의 미사일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배치 단계에 이르렀음을 공공연히, 위협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북한이 정말로 미국이나 일본을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겨서 핵 및 미사일 무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직접적인 협박 대상은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를 인질로, 우리의 뒷덜미를 잡고 흔들어야 미국과 일본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청와대 요직 인선 내용을 밝히면서 정 안보실장 기용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봤다.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금 북핵 위기상황에서는 안보의 개념이 보다 확장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한다. 안보와 외교가 하나로 묶인 상황을 풀기 위해서 안보실장의 덕목은 확고한 안보정신과 함께 외교적 측면이 필요하다.”
미국은 오랜 전통을 깨고, 제도를 고쳐가면서까지 국가안보보좌관, 국방부 장관에 군 출신 인사를 기용했는데 우리는 되레 안보 책임자에 민간인 출신 외교 전문가를 발탁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군사적으로 절박한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미국보다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원래 담대해서인가, 아니면 모험심의 발로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것이 진보정권의 진면목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인가.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특별한 압박수단을 가진 초강대국이다. 그런 미국이 세계, 특히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재편을 염두에 두고 군 출신 매파 인사들로 안보라인을 구축했다. 그런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인 우리는 외교적 수완과 기술을 발휘해서 북한 핵문제를 풀겠노라고 한다. 아무런 실효적 수단을 갖지 못한 우리가 외교 역량으로 북한의 야욕을 억제시킬 수 있다면 그건 마술이다. 아니면 이 또한 일종의 햇볕정책일까?
애초에 ‘사드 보고 누락’ 파문이 일게 된 배경부터 궁금하다. 사드포대 1세트가 발사대 6기와 X밴드 레이더로 구성된다는 것은 이미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선거기간 중 지속적으로 사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문 대통령이 그 점을 파악 못했을 리 없다. 게다가 1세트가 도입되어 우선 2기가 배치되고 4기는 보관 중이라는 것도 언론보도를 통해 공지의 사실이 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충격’을 강조했다.
국방부가 보고서에서 이 사실을 누락시켰고, 한민구 장관이 정 실장의 질문을 받고서도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는 게 청와대측의 주장이었다. 무기 체계에 정통하다고 할 수 없는 정 실장이 ‘보관된 4기’를 ‘(1세트 외에) 추가 도입된 4기’로 오해했을 수 있다. 한 장관은 별도로 4기를 더 도입했느냐는 질문으로 듣고 “그런 게 있었느냐”고 되물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 정 실장이 잘 알고 있었다면 한 장관에게 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정 혹은 수정할 요구할 일이었다. 마치 노렸다는 듯이 한 장관과 국방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안보·국방 사령탑다운 방식이 아니었다.
국가간에도 의리는 지켜져야
‘자주파’ ‘동맹파’라는 언론 표현도 많이 거북하다. 자주파라면 미국에 의존함이 없이 자주국방의 태세와 실력을 갖추자고 주장하는 측을 일컫는 말이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격앙된 어조로 따지듯 한 말이 생각난다.
“근 20년간 북한보다 수십 배가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1970년대를 어떻게 견뎌왔겠느냐. 그 많은 돈 우리 군인들이 떡 사먹었느냐. 옛날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닌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론자들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표출한 것이다. 문 대통령도 같은 인식일까? 이를테면 “사드가 없다고 우리가 겁낼 이유가 무엇인가.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미국에 맡겨둬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도 군사문제에 관한한 우리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라는?
정직하게 말하자. 지금의 우리 처지로 자주국방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도 가능하다고 우겨 미군을 밀어낸다면 정말로 전쟁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미군사동맹으로 인한 ‘식민지화’니 ‘신식민지화’니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전근대적 선동에 불과하다. 한미동맹의 역사가 63년(미군의 6.25참전 때로부터는 67년)이나 되었다. 그 동안 우리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미국이 식민지화를 추구한 적이 있는가. 자꾸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있게 만든다고 믿어서 그러는가.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사드인데 왜 우리가 부지를 내주고 북한 및 중국의 불만을 사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주한미군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 군대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 리 없다. 미국은 우리의 부모가 아니다. 그렇게 기대한다면 이야말로 백일몽이다. 개인 간에든 국가 간에든 의리는 지켜져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 안보의 제1선을 함께 지켜준 미국과 6.25 때 북한 편을 들어 우리를 공격했던 중국을 같은 반열에 놓고 저울질 한다는 것 자체가 배신이다.
안보정책은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는다. 5천만 국민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벌이는 정권은 있을 수 없다. 국내에서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서로 편을 갈라 다툴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한 편싸움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구한말 사정을 돌아보면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나라가 없으면 정부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있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해 갔다. 우리만 예외로 해주겠다는 보장이 있을 리 없다. 국민의 운명을 걸고 주사위 놀이를 하는 일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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