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하늘정원 노고단' 야생화 만발..누가 가꿨나?

바람아님 2017. 7. 31. 09:34
KBS 2017.07.30. 12:10


푸른 풀밭에 노란색 원추리가 물결을 이룹니다. 연보랏빛 일월비비추와 분홍색 지리터리풀, 둥근이질풀, 산꼬리풀도 바람에 흔들립니다. 멀리 끝없이 이어진 능선, 그 위를 넘나드는 구름과 어울려 독특한 경관이 펼쳐집니다. '구름 위 하늘 정원', '천상의 꽃밭'이라 불릴만합니다. 지리산 노고단입니다.



뜨거운 여름이지만 지대가 높은 노고단은 한낮에도 서늘합니다. 7월부터 8월까지 야생화는 절정을 이룹니다. 탐방로를 따라 노고단 정상까지 20여 종의 다양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산과 바람, 구름과 꽃...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원추리


일월비비추


지리터리풀


산꼬리풀


이런 꽃밭을 누가 가꿨을까요? 어떻게 다양한 야생화가 군락을 이룰 수 있을까요? 비밀은 노고단의 지리적 특성에 있습니다. 노고단은 해발 1,500m에 이르는 아고산 지대입니다. 연중 바람이 강하고 겨울에는 무척 춥습니다. 구름과 함께 안개가 많아 높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바람 많은 아고산 지대에서는 키 큰 나무(교목)가 자라기 어렵습니다. 대신 초본류가 왕성하게 자랍니다. 더구나 노고단 일대는 암반이 적고 토양층이 널리 분포합니다. 다양한 초본류가 생육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겁니다.

탐방로 주변에 흐드러진 야생화


범꼬리풀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20년 전은 전혀 달랐습니다. 과거 정상 부근에는 군부대와 훈련장이 있었습니다. 스키대회가 열렸고 야영객들이 텐트를 쳤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풀이 죽고 맨흙이 드러났습니다. 흙이 비바람에 침식돼 돌덩이가 드러났습니다. 마치 사막처럼 흉물스런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조사를 보면 정상 부근의 44%에서 흙이 드러난 채 훼손됐습니다. 1991년부터 3년간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했지만 복원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원 전 노고단 정상


복원 전 노고단 야영장


1994년부터 인위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노고단의 식생에 대한 과거 자료조차 없어서 주변 지역의 생태를 참고했습니다. 흙을 쌓은 뒤 풀을 옮겨 심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를 치고 침식을 막기 위해 볏짚도 덮었습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지금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천상의 화원'은 아고산대 자연환경과 사람의 노력이 결합해 이뤄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아고산대를 복원한 사례는 노고단이 처음입니다.


노고단 정상 2017년


우리나라 아고산 지역에서 초지를 볼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뭅니다. 아고산 지역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초지로 남은 곳은 더욱 드물기 때문입니다. 덕유산 향적봉이나 점봉산 곰배령 그리고 설악산 일부 지역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고단의 복원은 의미가 큽니다. 물론 아직 남은 과제도 많습니다.

노고단 방송 송중계소


노고단 군부대는 2007년 모두 철거됐습니다. 하지만 정상 바로 옆 방송 송중계 시설은 여전히 남아서 경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차량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올라오고 탐방객이 늘면서 외래종의 유입도 많습니다. 해마다 자원봉사자와 국립공원공단 직원이 외래종 퇴치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노고단에는 탐방객이 몰려듭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와 식생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약탐방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을 우선으로 하루 세 차례, 모두 천9백여 명만 '천상의 화원'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예약탐방제는 7월부터 10월까지 유지됩니다. 어렵게 복원한 노고단. 이대로 지켜내기 위해서 작은 불편은 감수해야겠지요.


용태영기자 ( yongt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