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9.2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대형 유인원, 즉 인간·침팬지·보노보·고릴라·오랑우탄 중에서 수컷의 음경이 가장 긴 동물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고릴라는 대형 유인원 중에서 몸집은 단연 제일 크지만 음경의 평균 길이는 불과 4㎝로 침팬지의 절반, 인간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환의 크기를 비교하면 서열이 좀 달라진다. 침팬지가 가장 큼직한 고환을 갖고 있고 보노보가 그 뒤를 바짝 쫓는다. 고릴라는 이 부문에서도 단연 꼴찌이다. 체격 대비 가장 왜소한 고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침팬지와 고릴라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고릴라 수컷은 어쩌다 체격에 걸맞지 않게 그처럼 작은 생식기를 갖게 되었을까? 생식기의 크기에 자존심까지 결부하는 인간 남성의 눈에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고릴라 수컷들은 생식기의 크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수컷들과 힘겨루기를 거쳐 일단 암컷들을 수중에 넣고 나면 일일이 암컷에게 검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침팬지나 인간 수컷은 마지막 성행위 과정에서 조차 자신의 남성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유인원 중에서 가장 큰 음경을 지닌 까닭일까. 그동안 음경의 크기와 남성의 매력에 관한 연구는 여러 차례 수행되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학술원회보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고환의 부피가 음경의 크기보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남자의 물건'이란다. 이번 연구에서 미국 에모리대 인류학자들은 남성 70명의 두뇌와 고환의 자기공명영상(MRI)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환의 부피가 작은, 즉 사정되는 정액의 양이 적은 아빠일수록 자식 양육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은 침팬지·보노보·고릴라·오랑우탄과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의 성향을 타고났지만 실제로는 거의 일부일처제를 시행하는 유인원이다. 다른 유인원 아기들이 나무를 탈 무렵 겨우 몸을 뒤집는 데 성공하는 무기력한 아기를 기르려면 부모 모두의 양육 참여가 거의 필수적이다. 인간 남성의 대형 음경과 중형 고환은 남자와 아빠의 역할을 고루 해내기 위한 절묘한 중용 진화의 결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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