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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 발

바람아님 2013. 9. 25. 09:38

(출처-조선일보 2010.03.01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강수진의 발을 보며 울컥 치밀어 올랐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박지성의 발을 보았고 이번에는 또 김연아의 발을 보고 말았다. 발바닥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양말을 신지 않는다는 이상화·모태범·이승훈 선수 등 우리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온통 굳은살투성이의 발도 보았다. 우리 속담에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며 나무란다'지만 이들은 모두 발이 미워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인간의 발은 모두 26개의 뼈와 33개의 관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몸의 부분들 중 가장 많은 숫자의 뼈로 구성된 매우 정교한 기관이다. 인간은 발바닥 전체를 땅에 붙이고 걷는 이른바 척행성(蹠行性) 보행을 하는데, 이는 포유동물에서는 매우 드물며 파충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원시 형태이다. 많은 동물들은 대개 발끝 또는 발굽으로 걷는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아이들처럼.

나무 위에서 사는 동물들의 발은 나뭇가지를 쥘 수 있도록 진화했다. 주로 구부러진 발톱을 사용하여 나뭇가지를 쥐는 대부분의 포유동물과 달리 영장류는 길고 유연한 발가락을 사용한다. 우리 인간의 조상도 한때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점차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발은 서서히 쥐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기능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보면 인간의 발은 퇴화한 부분도 있지만 지난 400만년 동안 꾸준히 직립보행을 위한 적응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 400만년의 진화적 적응을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든 인간 발명의 최대 실패작이 있다. 바로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우리의 발을 그 속에 꾸겨 넣는 신발이 그 장본인이다. 길면 4만년 혹은 수천년 전 불쌍한 발을 감쌀 목적으로 신기 시작한 신발이 오히려 발로 하여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옥죄고 있다.

이상화·김연아 그리고 '킬힐'이라는 무시무시한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멋쟁이 여성들의 발만 불쌍한 게 아니다. 어떤 모양이든 신발이란 걸 신고 다니는 현대인 모두의 발들이 애꿎은 감옥 속에서 울부짖고 있다. 주로 맨발로 다니는 아프리카 줄루족의 발이 유럽인들의 발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6개의 뼈들이 자유롭게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신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