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08 최재천 이화여대석좌교수·행동생태학)
몇 년 전 괌에 갔다가 경찰에 연행될 뻔한 적이 있었다. 같이 간 동료들이 잠시 쉬겠다는 틈에 주변 자연환경을 둘러보고 싶어 호텔을 빠져나와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10분 남짓 걸었을까. 어디선가 경찰차가 다가와 나를 불러 세우는 게 아닌가. 차에서 내린 두 경찰관은 몇 번이고 내게 괜찮으냐고 되물으며 내 행동거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다행히 정신병원으로 실려가진 않았지만,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아무도 대낮에 큰길을 걷지 않는단다. 물론 더운 건 사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니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비만을 흔히 서양 사람들의 골칫거리로만 생각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만이 심각한 사람들은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다. 서양으로 이주하여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먹기 시작한 동양인 집단에서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만 현상이 나타난다. 그 옛날 보릿고개를 밥 먹듯 넘던 사람들에게는 만일을 대비하여 섭취한 영양분을 몸 어딘가에 저축하려는 이른바 '알뜰 유전자'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대한비만학회가 비만을 규정하는 체질량지수(BMI)를 세계보건기구(WHO)의 30보다 훨씬 낮은 25로 정한 것은 상당히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체질량지수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키는 175cm인데 체중이 77kg이 넘으면 비만이다.
비만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남성들의 느긋함에 담겨 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성인남녀 542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만 여성은 1997년 17.2%에서 2007년 23.6%로 증가한 반면, 남성은 21.6%에서 무려 33.4%로 급등했다. 인간 여성은 보릿고개에도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 그래서 섭취한 영양분을 아껴 젖가슴, 엉덩이, 심지어는 허리춤에라도 축적해둬야 한다. 반면 인간 남성은 진화의 역사 내내 단 한 번도 출렁거리는 뱃살을 철썩거려본 적이 없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몸매는 어쩌면 그리 과장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날이 따뜻해지니 벌써 수영복 입을 걱정을 하는 여성들이 많겠지만, 몸매에 대한 조바심은 사실 남성들이 더 심각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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