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7.16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징이라면 흔히 불의 사용, 도구 제작, 언어 같은 요소를 든다. 인간이 자연 생태계의 정점에 올라서게 된 데에 이런 요소들이 지극히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춤과 노래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가무(歌舞)의 발명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인간 집단은 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큰 근육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임으로써 박자를 맞춘다. 이런 행위는 집단 내에 강력한 협동과 상호 지원을 낳는 아주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전투 직전에 부족원들이 모두 모여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는 마오리족의 '워 크라이(war cry)'가 그러한 예이다. 이 행위를 통해 전사들은 일시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넘고 자신을 초월한 전체 집단의 수호를 위해 기꺼이 온몸을 던지는 용기를 얻는다. 또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축제 때에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춤으로써 참가하는 사람들 사이에 정서적인 연대감을 느끼고 갈등을 해소한다. 이처럼 가무는 집단을 하나로 묶어주고 분쟁을 해결하며 영토 방어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
다른 동물종과 비교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단순한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 집단은 최소한 수백 명이 모여야 몰락하지 않고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침팬지 집단은 규모가 훨씬 작다. 침팬지는 수컷 15마리 정도만 모여 있어도 그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서 두 개의 적대적인 무리로 분열되고, 그 후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 끝에 한쪽 무리가 전멸한다고 한다. 이를 보면 집단 전체가 단합하여 강력한 세력을 이루도록 만드는 가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노래와 춤은 종교 제의에 쓰이든지 인간 내면의 섬세한 감성을 표현하는 식으로 훨씬 더 세련되고 고상한 기능을 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류 역사 초기에 담당했던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임무에 충실한 사례도 많다. 군악대의 행진곡이나 응원에 쓰이는 북 혹은 부부젤라 같은 악기가 그런 예이리라. 가무는 일종의 '문화적 페로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 이미지)
The Maori War Cry
Dance of Ma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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