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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8] 중국의 총

바람아님 2013. 9. 25. 09:42

(출처-조선일보 2010.07.23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화약(火藥)을 처음 개발한 곳은 중국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화약을 만든 이유는 살상용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단술사가 불사(不死)의 약을 찾기 위해서이다. 화약을 처음 언급한 책은 800년대 중반에 나온 도교 책자 '진원묘도요략(眞元妙道要略)'이며, 화약 제조 공식이 처음 기록된 책은 1040년경에 나온 '무경총요(武經總要)'이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이 역설적으로 인명 살상의 도구를 낳은 것이다.

화약을 이용한 무기로서 총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은 950년경에 발명된 화창(火槍)이다. 화창은 말하자면 5분 정도 지속되는 화염방사기라 할 수 있는데 꽤 강력한 무기여서 여러 전투에서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무기의 사용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로는 10세기 중엽에 제작된 비단 깃발의 그림을 들 수 있다. 유혹의 마신(魔神)이 명상에 잠긴 부처를 방해하는 내용의 이 그림에는 한 귀신이 일종의 수류탄을 던지려 하고 세 마리의 뱀 달린 귀신이 부처에게 화창을 겨누고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초기 형태의 총포가 된다. 12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총의 실물이 만주의 흑룡강성에서 발굴되었는데, 길이 약 30㎝, 무게 3.6㎏이고 약실(藥室)에는 점화를 위한 원형의 작은 구멍이 있는 완벽히 작동하는 무기이다. 이처럼 발전된 총이 있었다는 것은 그 이전 시대에 이미 총이 개발되었음을 말해 준다.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이 중국에서는 화약이 발명되었지만 무기로 사용되지 않았고 단지 불꽃놀이 용도로만 쓰였다고 믿고 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13세기 말 이전에 총포가 널리 쓰였고, 14세기에는 초보적이긴 하지만 많은 화포가 사용되었다. 14세기의 전투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십 문의 철제 대포는 이 시대에 공성전(攻城戰)이나 수상 전투에서 이런 무기들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증거이다. 다만 그다음 시대에 총과 화약이 주변 지역에 전해져서 크게 발전할 때 정작 본산지인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더 흥미로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