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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9] 일본의 총

바람아님 2013. 9. 28. 12:31

(출처-조선일보 2010.07.30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중국에서 개발된 총과 화약은 주변의 여러 문명권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총을 받은 게 아니라 1542~43년에 포르투갈 모험가인 핀투라는 인물에 의해 서양식 총기를 전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그 이전에 이미 서양식 총기가 들어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도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무렵 일본은 서양에서 크게 개선된 총을 수용한 후 자체적으로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기술적 요소만이 아니라 총의 사용 방식도 창의적으로 개발했다. 초기의 총은 다루기 어려운 물건으로 악명이 높았다. 탄환을 장전하여 발사하기까지 28단계의 조작을 해야 했으니 우선 그 자체가 아주 힘든 일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총이 많이 개량된 16세기에도 여전히 한 발을 발사하기까지 몇 분이 소요되었다. 사정이 이러니 총을 발사한 이후 다시 장전하는 동안 적이 돌격해 오면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한 일이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해결책이 소위 연속발사 방식이었다. 사수들이 열을 지어 앞줄의 사수들이 발사하고 나면 그동안 장전을 마친 다음 줄이 발사하고 다시 그 다음 줄이 발사하는 식이었다. 1575년 5월 21일의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극도로 발전한 연속발사 방식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이때 오다 노부나가 부대는 조총 사수들을 23열로 세워서 빠른 속도로 쏘게 함으로써 20초마다 1000발의 발사가 가능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런 정도의 화력이면 일본 군대가 당대 세계 최강의 부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10여년 뒤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조선은 세계 최강의 화력을 갖춘 막강한 군대와 대적한 것이다. 소총수들과 사무라이의 복합 군대인 일본군의 군사력에 대해서 역사가들의 평가는 일부 엇갈리지만, 동아시아 세계 질서를 크게 뒤흔들어 놓은 엄청난 세력인 것은 분명하다. 근대 초 일본의 기술 발전과 응용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런 강력한 왜군의 침입에 대해 의병과 승병 조직까지 나서서 결국 격퇴해 낸 우리 조상의 힘과 의지 역시 다시 새겨볼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