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15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근 5년 사이 우리는 세 분의 도저한 종교 지도자를 잃었다. 2006년 강원용 목사님이 돌아가셨고 작년에는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얼마 전에는 법정 스님마저 우리 곁을 떠나셨다. 평생 무소유의 덕을 설파하시던 스님은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어쩌면 그리도 정갈하게 비우시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특히 사리를 둘러싼 과학과 비과학 간 논쟁의 싹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신 스님의 후광이 진정 시리도록 아름답다.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학은 종교와 늘 껄끄러운 관계를 맺어왔다. 다윈 이래 많은 진화학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 사람의 걸출한 진화학자가 나란히 종교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그 중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었다. 2007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큰 화제가 되었던 이 책에서 도킨스는 종교의 해악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인류 사회에서 종교를 깨끗이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그야말로 기독교에 일종의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도킨스와 달리 남침례교 목사님께 편지를 쓰는 형식의 '생명의 편지'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생명의 편지'는 우리말 역서의 제목이고 책의 원제는 '창조'(Creation)이다. 다분히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제목의 책에서 그는 지금 우리 인류에게 닥친 전례 없이 심각한 생명의 위기는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함께 손을 잡아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주문 깨기'(Breaking the Spell)라는 제목의 책에서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언뜻 종교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종교의 실상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보다 철학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종교를 축소하거나 또는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자인 나는 기본적으로 이 세 학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와 과학이 인류 사회를 이끌어갈 양대 바퀴들임을 굳게 믿는다. 삼위일체 같았던 세 분의 큰 스승님이 남긴 빈자리를 이제 어느 분이 오셔서 채워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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