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3.22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어제는 '세계 물의 날'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듣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가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얘기.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유엔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계속 재탕하고 있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일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거의 20~30%나 웃도는데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오늘은 또 '세계 기상의 날'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낭비 국가'이다. 일년 중 매우 짧은 기간에 집중하여 쏟아지는 강수를 잘 관리해야 하는 '물 관리 필요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댐과 보를 건설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해 누수 방지와 물 절약 정책으로 수자원 활용의 극대화를 꾀하는 유럽 국가들로부터 배울 게 많아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를 세 차례나 방문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얼른 물컵부터 뒤집는다. 그러곤 물을 따르러 온 종업원에게 물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신신당부한다. 지금 세계에는 줄잡아 9억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다 마시지도 않을 물을 컵 가득 채워주는 일은 죄악이라는 것이다.
'물의 미래'의 저자 에릭 오르세나는 묻는다. "굶어 죽을 것인가? 목말라 죽을 것인가?" 미래학자들은 이번 세기 동안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메콩강, 요단강, 나일강 등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는 강들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다. 우리는 참으로 복을 넘치도록 받은 나라이다. 우리의 강은 모두 우리 땅에서 시작하여 우리 바다로 흐른다. 우리끼리만 잘 합의하여 보전하면 슬기롭게 물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 물 문제야말로 사회통합의 중요한 과제이다.
--------------------------------- <<관련도서 소개>> -----------------------------------------------
물의 미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양영란 옮김, 김영사 435쪽, 1만6500원
프랑스 출신으로 명문 런던정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저자는 "21세기의 물은 권력이다. 물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는 2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싱가포르·인도·방글라데시·중국·이스라엘 등과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 알제리 등 지중해 연안국에 이르기까지 물 위기의 현장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가뭄과 홍수, 물로 인한 질병으로 생사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만났다. 보다 실증적인 탐구를 위해 물리학자·곤충학자·농부·댐 건축가·의사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도 만났다.
그 결과물인 《물의 미래》는 마치 공들여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시종일관 생생한 물의 현장을 보여준다. 유용한 정보도 많다. 가령 '가상수'(假想水·virtual water)는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총량을 가리킨다. 이 가상수의 개념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 유럽은 모로코로부터 토마토를 수입하고 있는데, 트럭 1대가 토마토 20t을 싣고 모로코로부터 스페인까지 간다고 할 때, 우리는 그 트럭 1대 뒤에 각각 20㎥의 물을 실은 100대의 차가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t의 토마토를 기르기 위해서는 2000㎥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하는 미국인 한 명은 하루에 5400L의 가상수를 소비하는 반면, 채식주의자 한 명은 2600L만을 소비한다. 주민들이 쌀만 소비하지 않고 고기까지 곁들여 먹게 되면 물 수요량은 최소한 10배 이상 증가한다.
물은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대표적인 자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방글라데시에 홍수가 난다고 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이 해갈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기 못하고 있는 한계는 있으나 물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주 효과적이고 유익한 책이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33] 미인계 (美人計, honey trap) (0) | 2013.10.01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71] 소년십자군 (0) | 2013.09.30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70] 이혼(離婚) (0) | 2013.09.29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0] 종교와 과학 (0) | 2013.09.29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9] 일본의 총 (0) | 201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