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8.13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212년, 프랑스에서 한 소년이 예수가 자신에게 십자군을 이끌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타락한 어른 대신 순수한 어린이들이 십자군운동을 주도하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슬림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번의 기적을 보인 덕분에 이 소년은 순식간에 3만명의 어린이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지중해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면 바닷길을 걸어 예루살렘까지 진군해 갈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사악한 상인 두 명이 접근해서 아이들에게 배를 공짜로 태워 예루살렘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배에 탄 아이들은 모두 튀니지로 끌려가 노예로 팔리거나 난파를 당해 죽었다.
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실제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교과서에까지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해오는 이야기가 100%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첫 번째 사건은 독일의 한 양치기가 7000명 정도의 사람들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제노바까지 간 일이다. 그렇지만 그가 예언한 대로 바닷물이 갈라지지 않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중 일부가 마르세유로 갔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다른 사건은 12세의 프랑스 양치기 소년이 예수가 프랑스 왕에게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노라고 주장하며 약 3만명의 사람들을 끌고 파리 북쪽의 생드니까지 갔던 일이다. 이들은 모두 파리 대학 신학교수들의 권고에 따라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아마도 이 두 사건이 혼합되어 소년십자군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해석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되어 어떻게 설화와 전설이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Gustave dore, The Childrens Crus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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