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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72] '선교사 체위'

바람아님 2013. 10. 1. 08:58

(출처-조선일보 2010.08.20 주경철 서울대교수·서양근대사)


남녀가 성애를 나눌 때 남자가 여자 몸의 위에 올라가 서로 마주 보는 소위 '정상체위'를 서양에서는 '선교사체위(missionary position)'라고도 부른다. 흔히 하는 설명은 유럽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서 전도 사업을 벌일 때 현지 주민들이 낯선 자세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반드시 정상체위로만 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중세부터 근대 초까지 기독교 측에서 남녀 간 성애의 자세에 대해 간섭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교회의 입장은 금욕이 최선이지만, 나약한 인간들이 모두 그럴 수는 없으므로 결혼한 부부간에 사랑을 나누되, 오직 후손을 보는 목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회임(懷妊)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정상체위만 인정하고 나머지 자세들은 쾌락만을 좇는 사악한 방식이라며 비난했다. 그러므로 해외에 나간 선교사들이 똑같은 주장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최근 프리스트(R. Priest)라는 연구자가 이 말의 유래에 대해 합당해 보이는 설명을 제시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에 나온 유명한 '킨제이 보고서(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이다. 킨제이는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해서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는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의 '북서 멜라네시아 미개인들의 성생활'(1929)이라는 책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책 내용을 재검토한 프리스트의 설명에 의하면, 말리노프스키가 정확히 똑같은 표현을 한 적은 없으며, 다만 책의 여기저기에 유사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아마도 킨제이가 혼동을 일으켜서 그런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말리노프스키의 책에 나오는 내용은 남자가 위로 올라가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성행위 방식은 트로브리안드 제도에는 원래 없고 근자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하는 새로운 방식, 즉 '선교사 방식(missionary fashion)'인데, 현지 주민들은 보름밤에 벌이는 향연에서 이를 놀리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이 정상체위를 강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현지 주민들에게 들켰기 때문에 그런 용어가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