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7.0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물속에 흘러들어가는 배설물 때문에 중국은 간·폐·장 디스토마와 주혈흡충의 세계적인 저장소가 되었으며, 이것들이 심각한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었다. 중국 사람들의 간 기생충의 무게를 전부 합치면 200만명의 사람 몸무게에 해당한다." 에릭 존스라는 미국의 역사가가 과거에 중국의 기생충 문제가 심각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술한 내용이다. 그 사실을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그의 주장은 또 다음과 같은 논지로 발전한다. "그와 같은 대규모의 기생충 감염 때문에 사람들의 에너지가 손상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혹은 근동 지역의 생산을 위축시켰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실질적인 인력의 차이는 인구 수치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작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 역사는 결국 많은 '생산'보다는 많은 '인구'를 특징으로 한다. 이 점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아마도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은 상품(commodities)보다는 성교(copulation)를 더 좋아한 것 같다." 그는 분명 아시아를 의도적으로 폄훼하고 있다.
이런 편향된 견해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또 다른 인물로는 데이비드 랜즈라는 역사가가 있다. 그의 책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들 부국(富國)의 임무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부유하게 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지 못하는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상품 수출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하면 우리에게 사람들을 수출할 것이다."
그의 지론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가 우리에게 나쁠 뿐 아니라 세계에 나쁜 것이며, 따라서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을 버리라고 하자. 그러나 나는 올바른 생각보다는 진실을 더 선호한다."
역사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구 학계의 대가들 중에 이런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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