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2.16 최재천 이화여대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근 들어 부쩍 들어 부쩍 국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에서는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것까지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매력적인 국가 이미지를 창출하느라 애쓰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나는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대한민국, 대학문국(大韓民國, 大學問國)'으로 세우고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느라 분주하다. 한 마디로 '학자의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는 얘기이다.
우리나라가 어디 파기만 하면 시커먼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곳인가? 깊은 산중 이곳저곳에 조상님들이 우리 후손들을 위해 금괴라도 묻어주셨던가? 불과 반세기여 전에 전쟁으로 거의 완벽하게 쑥대밭이 되었던 나라가 아니던가? 세상 다른 나라들은 그동안 전부 뒷짐 지고 놀았더냐? 어떻게 우리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기적을 믿고 싶어한다. 기독교인들은 모세가 홍해의 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기적을 믿는다. 나는 과학자이지만 모세의 기적은 믿어볼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기적은 정말 믿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려 지어낸 얘기 같다. 여전히 기적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확실히 안다. 그리 좋지도 않은 교육제도 속에서도 그저 죽어라고 공부해서 이룬 기적이라는 것을.
나는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가 기댈 곳은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교육은 그야말로 고사 직전이다. 당장 돈이 될 듯한 개발사업에만 쏟아붓지 말고 수십 조의 예산을 교육에 투자하여 대한민국을 '대학문국'으로 만들어보자. 이 나라에게 머리로 먹고 사는 것 외에 진정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계인의 머릿속에 '은자(隱者)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학자의 나라'로 각인되기만 하면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들이 홀연 날개를 달고 훨훨 날 것이다. 독일·이스라엘·인도 등이 머리 좋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그들에게는 약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대한민국은 머리도 좋고 정직하며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라는 평판보다 더 훌륭한 국격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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