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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5] 오름과 내림

바람아님 2013. 9. 19. 22:48

(출처-조선일보 2010.02.09 최재천 이화여대석좌교수·행동생태학)


도요타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다. 자동차 산업의 재기를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미국이 마치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연일 으르렁거린다. 자동제동장치의 결함으로 시작된 리콜 사태가 잘나가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로 번지며 도요타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사실 도요타는 최근까지 일등기업의 대명사였다. 2007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도요타는 어떻게 세계 1등이 되었나'에는 도요타의 15가지 기본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는 '도요타는 완벽을 추구한다', '권위적인 태도보다 겸손의 힘이 더 세다' 등 지금 읽으면 낯이 뜨거워질 원칙들이 줄줄이 담겨 있다. 특히 '문제를 드러내면 해결책이 보인다'라는 원칙의 세부사항에는 "문제를 발견하면 환영받는다"라는 말도 있고, '문제점은 최대한 빨리 드러낸다'에는 "도요타는 리콜을 망설이지 않는다"라는 말도 버젓이 적혀 있다.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도요타는 오랫동안 2등이었다. 1등을 추격할 때에는 겸손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리콜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1등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고백이 예전처럼 쉽지 않았나 보다. 1등으로서 지켜야 할 권위와 완벽 추구의 자박(自縛)이 도요타를 망설이게 한 것이다. "가장 높은 정상까지 올라갈 수는 있지만 거기 오래 머물 수는 없다"던 버나드 쇼의 혜안이 새롭다.

세상사를 둘러보면 오름의 추세는 대체로 완만한데 내림은 너무나 급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따뜻한 공기는 상승기류를 타고 서서히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이 되어 땅으로 곤두박질한다. 주가도 오를 땐 야금야금 애를 태우다가 떨어질 땐 폭락한다. 얼마 전에는 평소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던 어느 개그맨이 야밤 폭행사건 하나로 하루아침에 추락하고 말았다.

사전에서 '상승'의 반대말을 찾으면 '하강' 또는 '하락'이라 이르건만, 실제로는 '폭락' 아니면 '추락'이라고 느낀다면 나만의 관찰 오류일까? 하기야 물가는 종종 폭등하며 일단 오르면 좀처럼 내려오지 않지만. 오름과 내림의 이런 불균형에는 어떤 물리법칙이 존재하는 것일까? 공중으로 던진 공이 그리는 포물선에서 자연의 대칭성을 읽는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