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4] 미친 기업과 착한 기업

바람아님 2013. 9. 19. 22:53

(출처-조선일보  2010.06.2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1886년 미국 대법원의 수석재판관인 모리슨 웨이트는 미국수정헌법 제14조에 근거하여 회사는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는 존재라고 판결했다. 회사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실제 사람과 똑같은 존재인 법인(法人)이 되어서, 그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자산을 취득하며 노동자를 고용할 뿐 아니라 법원에서 자기 권리를 옹호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회사는 어떤 성격의 존재였던가? 캐나다의 법률가이자 작가인 조엘 바칸은 저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 박사가 창안한 심리검사 기준을 적용하여 회사(법인)가 실제 사람(자연인)과 같은 존재라고 가정하면 과연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분석해 보았다.

회사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여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조종'하려고 하며, 자신이 늘 최고라고 주장하는 '과대망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신 때문에 희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동정심의 부족'과 '비사회적 태도'라는 특징도 보인다. 회사가 위법 행위를 하다가 발각되면 약간의 벌금을 물고는 다시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점에서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감이 없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존재이다. 회사는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의도로만 관계를 맺으려고 하므로 대인관계는 언제나 '피상적'이다. 실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다름 아닌 사이코패스, 즉 폭력성을 동반한 이상심리 소유자이다. 지금까지 많은 회사는 분명히 이런 성격의 존재였다. 멕시코 만에 엄청난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BP의 행태를 보면 그런 분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경제 역시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과거와 같은 행태를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 마케팅 이론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기업들 보고 모두 천사 같은 박애주의자가 되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성숙한 인격자가 되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