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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고장 난 오른쪽 날개, 정부 내 균형이 마지막 보루다

바람아님 2017. 12. 25. 06:46

(조선일보 2017.12.25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최저임금, 비정규직, 법인세 등 정부 정책 세계 추세와는 딴판
"뭘 믿고 이러나" 싶을 정도인데 우파는 비전도 목소리도 없어
정치권 좌우 균형 무너진 지금, 정부 내의 견제 기능 되살려야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세상일이 다 그렇듯 중요한 것은 미래다.

그러나 현재가 미래의 발목을 잡을 때는 그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결정된 주요 정책 중 우리 경제에 장기적 부담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 정책, 법인세 인상 등이다.

공통점은 모두 갈라파고스적, 즉 전반적 흐름, 맥락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중위 임금 대비 비율이 이미 프랑스 정도를 제외한 OECD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데도 16.4%라는 어마어마한

폭으로 올랐다. 그 부담은 취약 근로자와 영세 기업이 고스란히 질 것이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과 멀고도 멀다.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된 근로자들만 대폭 인상의 수혜를 마음 편하게 누릴 뿐이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도 갈라파고스적 접근의 대표적 예이다. 선진 각국은 이미 비정규직 사용 제한을 완화해 시장 적응력을

높이되, 정규직과 처우 차이를 줄이는 데 매진하고 있다. 애초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은 국제 경쟁의 비용 절감 압력 속에서

정규직의 입지를 유지해 저항을 줄이면서 주변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타협책이었다. 그러니 이들을 통째로 없앤다는 것은

취업 역량이 떨어지는 근로자의 일자리를 없애는 반면, 양질 일자리를 확보한 그룹의 입지를 공고히 할 뿐이다.


법인세 인상 역시 그 대담함이 지나치다. 법인세의 성장 및 분배적 함의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변 상황에 따라 그 파장이 현격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경쟁국들이 법인세를 앞다퉈 내리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제약이다.

그럼에도 상당폭 인상을 단행한 것을 보면 '도대체 뭘 믿고?'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흔히 좌파는 분배를 중시하고 우파는 성장을 중시한다고 한다. 좌파는 전체 파이를 키우는 노력이나 글로벌 경제 환경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데 비해 우파는 어려운 사람들의 고단함이나 격차에 덜 예민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양자 간 대립이 불가피할 것 같지만, 사실 몇몇 선진국에서 보듯 실제 정책 과정은 참여 주체의 역량에 따라

대립보다 보완과 개선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은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내세우는 명분 이면에 별도의 동기(hidden agenda)를 감춘 경우이다.

약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론 다른 이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둘째,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unintended consequence)에 대한 무지이다.

국내외 선례에서 부작용을 찾아보지 않는 게으름과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맹목인데, 이는 통상 자기 욕심에서 발생하니

사실 첫째와 둘째는 긴밀히 결합해 있다.

이 두 가지가 견제되지 않을 때 세계 흐름이나 취약층의 처지와 동떨어진 결정이 무사 통과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반된 입장 간의 날카로운 논쟁이 중요한 것이다.

소위 팩트와 지성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표리부동한 논리가 폭로되고, 제한됐던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튼튼한 좌우 양 날개가 필수이다.


유감스럽게도 근래 생산된 정책의 품질을 볼 때, 우리 사회는 지금 한쪽 날개로만 날고 있는 듯하다.

분배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회의적인데 성장만 억누르는, 선거 과정의 선정적 구호들이 그대로 경제정책의 근간이 돼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오른쪽 날개는 독자적 목소리와 비전이 아예 없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지난 대선 당시 모든 주요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다.

비정규직 억제 역시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까지 함께 주장한 공약이다.

글로벌 경제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번영 전략을 제시해야 할 우파까지도 분위기에 휩쓸려버리니

치열한 논쟁과 견제, 즉 부실한 주장을 여과하는 과정 자체가 없다.


이렇게 날개 하나가 고장 나 버린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부가 중심을 잡는 것밖에 없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개별 이해 집단은 그저 이해 집단일 뿐이고, 정부는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미래로 이끌어야 한다.

올해의 결정들을 볼 때 정부의 중심 역시 조직 근로자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지만, 과거 정권 사례로

볼 때 정권 초기에 대선 캠프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직업 공무원)을 압도해버리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선돼온 문제이다. 치우친 사회에서 정부 내 견제 기능은 마지막 보루에 가깝다.

다가오는 새해, 어공과 늘공 모두의 건승을 빈다.

서로의 식견과 경륜에 귀 기울여 좋은 시너지를 만드는 성숙한 채널이 정부 안에서만이라도 작동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