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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李小龍 무협영화 속의 中華제일주의

바람아님 2018. 1. 16. 09:34

(조선일보 2018.01.16 남정욱 작가)


['사망유희']


대만 감독 '와호장룡' 美서 돌풍… 깜짝 놀란 중국, '영웅' 제작
진시황 史劇 통해 중화주의 역설, 과거 무협물에도 민족주의 스며
中國 중심의 수직적 질서 강조… 영화와 다르지 않은 현실에 착잡


남정욱 작가남정욱 작가


로마 검투사와 청나라 무림(武林) 고수의 대결은 검투사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글래디에이터'와 '와호장룡'이 작품상을 놓고 격돌한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미국인에게 중국 영화는 두 가지 의미다.

자막이 있는 영화 그리고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화. 한마디로 감상이 불편하고 보는 내내 비웃음

가득한 게 중국 영화라는 얘기다.

그런 대접을 받던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까지 올랐으니 이게 보통 일인가.


'와호장룡'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1억달러 수입을 돌파했다.

수익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한 편의 영화가 중국 무협영화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이다.

중력은 무시하지만 아름답다면 참아줄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의 증거가 '와호장룡'의 아카데미 촬영, 미술상 수상이다.


대만 감독 리안이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를 강타하자, 중국 영화계는 난리가 난다.

무협(武俠)의 원류는 자신들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자존심이 심하게 깎인 것이다.

해서 부랴부랴 만들어진 영화가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이다.

목표는 무조건 '와호장룡'보다 크고 멋있게. 원래 사회주의 국가는 밀어줄 때 화끈하게 밀어준다.


정부의 지원 아래 물량 제한 없이 만들어진 '영웅'은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한다.

관객을 놀라게 한 건 또 있다. 영화에 드러난 중국의 세계관이다. '영웅'은 진시황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순간 킬러는 진시황 암살을 포기하는데 그를 죽이는 순간 천하는 또 수십으로 쪼개져 백성의 고통은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결국 인민을 위해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삼키고 그 강력한 하나의 제국

아래서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2000년 중국 정치 사상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같은 강대국이지만 미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태도는 형식적이라도 '수평적'이다.

중국은 약소국이 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중국의 위계질서 안에 들어와 충심으로 제국을 섬길 때

질서와 평화가 찾아온다고 '수직적으로' 사고한다. 참으로 답 안 나오는 중화민족 제일주의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이런 생각은 '영웅'에서 처음 튀어나온 게 아니다. 1960~70년대 홍콩 영화의 양대 산맥이었던 호금전과 장철의 시대를 끝내고

홍콩 영화계를 통일한 사람이 이소룡(브루스 리)이다. 그는 '당산대형'으로 홍콩 영화 흥행 역사를 새로 썼고 '정무문'으로

자신의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이소룡은 생전에 네 편의 대표작과 나중에 '사망유희'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영화의 촬영

일부(대략 40분)를 남겼다.


나머지 두 작품인 '맹룡과강'과 '용쟁호투'를 포함하여 이소룡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중심에는 항상 화교(華僑) 커뮤니티가 있고 반대편에는 이들을 괴롭히는 토착 세력이 있다. 이들은 '당산대형'에서는

태국의 마약 조직이었고 '정무문'에서는 일본인들이었으며 '맹룡과강'에서는 로마의 갱단이었다. 그리고 이 악당들은

모두 이소룡의 특기인 발차기에 박살이 난다. 이소룡이 화교 문화권의 영웅이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 개봉 때마다 극장 안을 가득 채웠던 화교들의 환호성은 유명하다. 개인의 의식이 민족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불가능하다. 중국어권 민족의 연대와 중국에 의한 세계 질서의 회복이 이소룡의 무의식에 깔린 중화민족

제일주의였다고 말한다면 비약이 너무 심한 걸까.


이소룡에게 무술(武術)은 질서의 다른 말이었다. 자기 무술이 최고이기를 바라는 거야 무도인에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다소 병적인 강박이 있었다. 그의 유작인 '사망유희'를 보자. '사망유희'는 우리나라 법주사 팔상전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된 영화다. 우연히 사진으로 팔상전을 본 이소룡은 탑의 층마다 무술의 고수를 배치하고 이를 하나씩 깨고 올라가는

영화를 구상한다.

이 무술들은 각기 다른 나라를 상징한다. 이소룡이 죽지 않고 영화를 완성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태권도의 대가(大家)

이준구(워싱턴DC 연방의회 등 미국 중심부에서 60여 년간 태권도 보급을 해온 미국 태권도의 스승이자 개척자)가

이소룡의 발밑에 무릎을 꿇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소룡이 생각한 최고의 무술은 태권도였고, 실제로 그에게 발차기를 가르쳐 준 사람도 이준구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일까. 아니다. 우리는 영화 속 중국식 세계관을 현실에서 심심찮게 체험 중이다.

영화와 현실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