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3.27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93] 박지향 '근대로의 길'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젊은 시절, 우리나라에 대한 불만과 열등감의 제일 큰 원인은 가난 자체보다는 우리나라가
'실력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선진국들은 봉급과 사회적 명성과 출세가 개인의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우리나라는 실력보다 연줄이 취업과 승진, 영달을 결정하는 현실이 노엽고 슬펐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의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우리나라도 급속히 실력사회로 변모해 왔다.
물론, 아직도 낙하산 인사 등 부조리가 횡행하지만 기업이나 국가나 실력 없이 꾸려나갈 수가 없게 되니 실력자들이
중용되었고, 그래서 이제 완전한 실력 사회가 목전(目前)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발의한다는 개헌안의 여러 조문이 우리나라를 다시 왕조 시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일례로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해서 동일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국가가 노력한다면 아주 훌륭한 이상 같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헌법 조항이 되면 현재의 정부 시책, 경제 상황과 결합해서 국민의 유전자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
이 정부는 노골적으로 노동자 편을 들고, 기업을 정부와 노동자 공동의 적(敵)으로 간주한다는 인상도 준다.
정부는 성과급제도 못마땅해하고, 노조의 전횡을 옹호하고,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헌법에 못 박힌다면 국민은 어차피 임금은 같으니 일은 최소한만 하려 하지 않겠는가.
가령, 어느 건설회사의 배관공 30명이 새로 짓는 아파트 30동을 한 동(棟)씩 맡아 시공했는데
10개 동은 100년이 거뜬할 정도로, 10개 동은 10년은 무사할 정도로, 10개 동은 몇 년 안에 물난리가 터지게
시공했더라도 30명은 일단 동일임금을 받고, 입주자의 아우성과 배상소송 때문에 회사가 망해도 퇴직금까지
챙기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법칙이 된다면 업무와 노동의 질이 저하되어 불량제품과
부실용역이 국민적 노이로제와 국가 부실을 유발하게 되지 않을까?
박지향 교수의 최근 저서 '근대로의 길'을 보면 1940년 유럽에서 직업윤리가 철저한 유럽의 신교도 국가들이
그렇지 못한 가톨릭 국가들보다 40%나 더 부유했다고 한다. 한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면서 근면,
성취의욕의 유전자를 습득했는데 그 유전자가 이제 다시 왕조시대의 나태, 무책임의 유전자로 일그러지지 않겠는가?
**. 블로그 내 관련 게시물
"개인의 자유가 서구 近代 만든 힘… 우린 아직 멀었다" http://blog.daum.net/jeongsimkim/27616 박 교수는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영국에 주목했다. 영국이 가졌던 강점은 ▲경쟁 체제가 이뤄낸 정치적·군사적 다원화 ▲지적 자유가 낳은 과학기술 ▲사유재산권이 주는 경제적 동기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열쇠는 '개인(個人)'의 존재였다. "자유, 소유, 권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분산돼 있었습니다. 그 덕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뜻대로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근대로의 길(유럽의 교훈)/ 저자 박지향/ 세창출판사/ 2017.08.21/ 260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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