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22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 권력 심장부 취재해 트럼프 비판
Fear: Trump in the White House
밥 우드워드 지음|사이먼&슈스터|449쪽|30달러
"'트럼프 대통령은 왜 중국·러시아·이란·시리아·북한 같은 미국의 적보다
한국에 대해 더 분노하는지 설명이 안 된다.'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런 농담을 나누곤 했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75)가 새로 펴낸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를 보면, 트럼프는 집요하게 한국을 공격한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참모들이 트럼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 시도를 막아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트럼프에게 한국은 미국에 엄청난 무역 적자를 안겨준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주한 미군과 사드(THAAD)에 또 다른 막대한
비용을 쓰게 하는 나라다. 외교든 군사든 '비용'과 '미국 우선' 관점에서 생각하는 트럼프로서는 그대로 둘 수 없는
나라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이 책 '공포'를 보면 실제로는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외교·안보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은 상상 이상으로 가볍다.
지난해 7월 트럼프는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에 미국이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그냥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전쟁 끝낸 후 미군을 귀국시켜야 한다"고 했다.
므누신 재무장관에게는 그럴 증거가 없는 상황인데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그냥 선언하라"고 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결정을 '그냥(just)' 하자고 한 것이다.
'공포'를 읽다 보면 정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예측불허에 고집불통인 대통령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참모들은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최근 뉴욕타임스 익명의 기고자가 자신을 정부 내 저항 세력이라고 했듯, 이 책에 등장하는 정부 내 주요 인사들도
마치 트럼프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 사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즉흥적인 사람인지
저절로 드러나도록 썼다. 트럼프 백악관을 파헤친 책 ‘공포’는 1주일 만에 110만부가 팔렸다. /AP 연합뉴스
'화염과 분노' 등 지금까지 트럼프를 다뤄 성공한 책들의 주제는 비슷하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적합한 사람이 결코 아니며 트럼프의 백악관은 엉망진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포'가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의 명성과 신뢰도이다.
독자들은 우드워드가 썼기 때문에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에 이르게 한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특종'이라 불린다.
초년병 기자 시절 이미 역사를 바꾼 기자가 된 우드워드는 그 자신 워싱턴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그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백악관을 깊숙이 들여다본 저작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왔다.
'공포' 역시 발간 첫날 75만부가 팔렸고 일주일 만에 11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9월 상반기 워싱턴발 주요 뉴스는 '공포'가 지배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드워드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해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첫 비서실장이었던 렌스 프리버스는
"트럼프는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든 지렛대를 사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프리버스는 "트럼프는 그 지렛대를 내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2016년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취재 현장에서 느낀 트럼프의 무서움도 바로 이런 것이다.
트럼프는 즉흥성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육감을 망치는 사전 준비는 좋아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의 리스트' 같은 것도 만들지 않는다. 그때그때 사정 봐가면서 일을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도 매우 트럼프다운 이벤트였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준비 부족일 수 있지만 트럼프 입장에선 즉흥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무대였던 것이다.
트럼프는 교수와 지식인을 싫어한다.
군인이자 학자이기도 한 맥매스터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이 알려준 주의사항은 '트럼프에게 강의하지 마라'였다.
맥매스터가 떠나자 트럼프는 "그 사람 책 썼느냐"고 물었다.
20분간 자신의 이론을 설파한 맥매스터에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맥매스터를 최종 낙점한 것은 사위 쿠슈너가 언론이 맥매스터를 좋아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트럼프의 트위터를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트럼프는 트위터가 자신의 확성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쓴 트위터 메시지 중 20만 개 이상의 '좋아요' 반응을 받은 것은 따로 모아 연구하기도 했다.
인기 있는 이유가 주제 때문인지 표현 때문인지 찾아 더 전략적으로 트위터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자신을 '140자(당시 트위터에 쓸 수 있는 최대 글자수)의 헤밍웨이'로 자부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공포가 진짜 힘'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약한 모습은 보이지 말고 큰 실수를 했더라도 절대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트럼프가 즉흥적인 결정으로 미국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이 몰려온다.
트럼프가 한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집요하게 흔들고자 했는지 알게 되면 공포의 강도는 조금 더 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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