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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과학] 죽음 향한 '시속 830m', 단풍은 왜 아름다울까

바람아님 2018. 11. 5. 06:38

중앙일보 2018.11.04. 05:00


시속 830m의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남하합니다. 하루에 20㎞. 이 마지막을 구경하러 사람들은 삼삼오오 산으로 모여듭니다. 마치 그리스도교 국가의 풍습인 사육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한 달여에 걸친 이 여행이 끝나면 가을도 끝이 나게 되죠. 바로 ‘단풍’ 얘깁니다.

지난해 11월 14일 오후 전남 여수시 미평동 봉화산에서 촬영된 단풍. [연합뉴스]
올가을 단풍 많이들 즐기셨나요? 기상청에 따르면 단풍은 지난 9월 27일 설악산에서 시작돼 10월 17일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추위를 따라 이동하는 단풍. 11월 초인 지금쯤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까요. 오늘 3분 과학은 가을의 찬란한 죽음, 단풍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숨겨진 색소 드러내는 단풍...추워지면 ‘에너지 절약’ 신호

김현석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원래 나뭇잎에는 초록색을 띠는 엽록소 외에도 여러 개의 색소체가 숨어 있다”며 “예를 들어 노란색 단풍의 경우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노란 색소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단풍의 생성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여름에 초록색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른 색소들이 가을이 되면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죠.

나뭇잎 속에는 초록색 엽록소 외에도 크산토필ㆍ안토시아닌ㆍ카로티노이드 등 다양한 보조색소가 들어있다. [사진 미국 산림청]
카로티노이드 외에도 나뭇잎은 엽록소의 활동을 보조해주는 보조색소를 많이 갖고 있는데요. 계란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크산토필(Xanthophyll)’ 등이 그것입니다. 광합성이 활발한 여름철에는 이 보조색소들이 엽록소의 효율을 높여줍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무는 햇빛을 받아들여 광합성을 하고, 이를 통해 물ㆍ산소ㆍ포도당 등의 유기 에너지를 합성해 살아가죠.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본체가 끊임없이 나뭇잎에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뀔수록, 광합성의 원료가 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듭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일사량이 많은 하계에는 나뭇잎이 광합성을 통해 광에너지를 유기에너지로 전환한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일사량이 적어져 활엽수는 광합성을 포기하게 되고 떨켜를 형성해 잎을 떨어뜨린다. [사진 pixabay]
나무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과감히 광합성을 포기합니다. 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소를 차단하기 위해 차단막도 설치하죠. 이 세포층을 ‘떨켜’라고 합니다. 떨켜로 인해 영양공급이 끊기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그제야 보조 색소들이 각자의 색을 내게 되는 것이죠.


김현석 교수는 “활엽수는 여름에 고밀도로 일하고 겨울에는 잎을 떨어뜨린다”며 “그 전에 질소ㆍ인ㆍ칼륨 등 주요 영양소를 나무 몸체에 농축시켜두고 겨울을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작업을 ‘재전류’ 혹은 ‘체내전이(Retranslocation)’라고 합니다. 이듬해 봄이 되면 이때 저장된 영양분들을 다시 잎으로 보내 광합성을 돕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해충과 함께 진화해온 '붉은 단풍'...북미ㆍ아시아에 유독 많은 이유는

뉴욕 틸슨에 있는 일본 단풍나무. 2009년 이스라엘과 핀란드 연구진은 단풍의 붉은색이 해충을 쫓는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단풍 중에서도 붉은색을 띠는 것들은 조금 특별합니다. 김 교수는 “붉은색 단풍은 수용성 색소인 ‘안토시안(Anthocyan)’에 의해 나타나는데, 이들은 엽록소 파괴로 드러난다기 보다는 가을철에 나무가 일부러 생산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광합성도 중단하는 마당에 왜 안토시안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2009년 6월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재밌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붉은색 단풍이 해충을 쫓는다는 것이었죠. 심차 레프-야돈(Simcha Lev-Yadun) 이스라엘 하이파대 교수 연구팀은 수백만년 간 곤충과 함께 공존한 단풍나무가 이들을 내쫓기 위해 진화해왔다고 설명합니다. 나뭇잎이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 가을에 알을 낳는 해충에게 ‘나는 강한 독성물질을 갖고 있고, 영양소가 적어 곧 죽을 것이다’라는 신호를 준다는 것이죠.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고 있다. 이스라엘 심차 레프-야돈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약 262개 단풍 수종이 벌레와 함께 공존하며 진화해왔다. 붉은색 단풍은 벌레들에게 독성이 있고 영양가가 적다는 것을 경고하는 표시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중앙포토]
연구진은 북미와 아시아 대륙에는 붉은색 단풍이 많고, 반대로 유럽에는 노란색 단풍이 많은 데 의문을 갖고 연구를 하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질학 제3기에 해당하는 약 6500만년 전부터 200만년 전 사이에는 빙하기와 추위가 풀리는 간빙기가 반복됐죠.


그런데 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있는 북미는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과 곤충이 남하하고 북상하며 공존하기 쉬웠던 반면, 알프스처럼 산맥이 동서로 뻗어있는 유럽의 경우 나무와 곤충의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들이 함께 멸종해 붉은색을 띠는 종은 거의 진화하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유럽에는 노란색 단풍이, 북미와 아시아에는 붉은색 단풍이 많은 것은 산맥의 모양 때문이라고 이스라엘과 핀란드 공동연구진이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뉴파이톨로지스트(New Phytologist)에 2009년 6월 발표됐다. [자료제공=New Phytologist]


햇빛 많으면 더 선명한 단풍...지구온난화 오면 보기 힘들다

붉은색 단풍이 나무가 일부러 만들어내는 안토시안 때문임을 알았다면, 일사량이 풍부할수록 단풍이 더 아름답다는 설명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토시안의 색소 배당체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광합성으로 저장된 당이 더 많을수록 더 잘 합성됩니다. 햇빛이 많을수록 단풍색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선명한 단풍의 색을 이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로 지구 온난화 때문인데요. 온도가 따뜻해지면, 당연히 나무는 잎을 늦게 떨어뜨리게 되겠죠. 현재는 9월 말이지만 길게 보면 10월 초ㆍ중순으로 단풍이 드는 시기가 점점 늦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사량이 적어지는 겨울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색은 지금만큼 또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사량이 많고 강수량이 적을수록 선명한 단풍이 든다. 사진은 태백 철암천 단풍 와이드샷. [사진 김경빈 기자]
실제로 2014년 7월 국제학술지 ‘세계의 생태와 지리학(Global Ecology and Biogeography)’에 발표된 정수종 프린스턴대 박사후과정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과거 18년간 단풍의 시작 시기는 평균 5일 정도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 현재와 같은 속도로 탄소배출량이 늘어난다면 산업화 이전시기에 비해 지구의 평균온도는 5.6도 올라가게 되며, 이 경우 단풍이 3주나 늦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죠.


긍정적으로 전망해 2100년까지 전세계 평균기온이 1.5~2도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추가로 일주일 정도의 단풍 지연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 산림청은 2010년 약 70%의 수종(樹種)이 고도가 높은 산 속이나 북쪽 캐나다로 이동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조금씩이지만 단풍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입니다.

케이웨더가 제공한 올해 첫 단풍 시기와 단풍 절정 예상시기 [자료제공=케이웨더]
11월. 올해도 단풍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1.3℃ 낮은 13℃였으며 전국 강수량도 태풍으로 인해 평년보다 많아 단풍을 즐기기에 썩 좋은 조건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지리산을 비롯해 주요 국립공원의 일부 탐방로는 통제에 들어간다고 하니, 마지막 단풍을 즐기려면 걸음을 재촉해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상정보제공회사 케이웨더에 따르면 단풍은 오는 7일경 내장산과 무등산 등에서 절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하네요.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