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11.04. 05:00
시속 830m의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남하합니다. 하루에 20㎞. 이 마지막을 구경하러 사람들은 삼삼오오 산으로 모여듭니다. 마치 그리스도교 국가의 풍습인 사육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한 달여에 걸친 이 여행이 끝나면 가을도 끝이 나게 되죠. 바로 ‘단풍’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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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색소 드러내는 단풍...추워지면 ‘에너지 절약’ 신호
김현석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원래 나뭇잎에는 초록색을 띠는 엽록소 외에도 여러 개의 색소체가 숨어 있다”며 “예를 들어 노란색 단풍의 경우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노란 색소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단풍의 생성원인을 설명했습니다. 여름에 초록색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른 색소들이 가을이 되면 얼굴을 내민다는 것이죠.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무는 햇빛을 받아들여 광합성을 하고, 이를 통해 물ㆍ산소ㆍ포도당 등의 유기 에너지를 합성해 살아가죠.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본체가 끊임없이 나뭇잎에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뀔수록, 광합성의 원료가 되는 햇빛의 양이 줄어듭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김현석 교수는 “활엽수는 여름에 고밀도로 일하고 겨울에는 잎을 떨어뜨린다”며 “그 전에 질소ㆍ인ㆍ칼륨 등 주요 영양소를 나무 몸체에 농축시켜두고 겨울을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작업을 ‘재전류’ 혹은 ‘체내전이(Retranslocation)’라고 합니다. 이듬해 봄이 되면 이때 저장된 영양분들을 다시 잎으로 보내 광합성을 돕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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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과 함께 진화해온 '붉은 단풍'...북미ㆍ아시아에 유독 많은 이유는
2009년 6월 이스라엘과 핀란드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재밌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붉은색 단풍이 해충을 쫓는다는 것이었죠. 심차 레프-야돈(Simcha Lev-Yadun) 이스라엘 하이파대 교수 연구팀은 수백만년 간 곤충과 함께 공존한 단풍나무가 이들을 내쫓기 위해 진화해왔다고 설명합니다. 나뭇잎이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 가을에 알을 낳는 해충에게 ‘나는 강한 독성물질을 갖고 있고, 영양소가 적어 곧 죽을 것이다’라는 신호를 준다는 것이죠.
그런데 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있는 북미는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과 곤충이 남하하고 북상하며 공존하기 쉬웠던 반면, 알프스처럼 산맥이 동서로 뻗어있는 유럽의 경우 나무와 곤충의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들이 함께 멸종해 붉은색을 띠는 종은 거의 진화하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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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많으면 더 선명한 단풍...지구온난화 오면 보기 힘들다
붉은색 단풍이 나무가 일부러 만들어내는 안토시안 때문임을 알았다면, 일사량이 풍부할수록 단풍이 더 아름답다는 설명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토시안의 색소 배당체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광합성으로 저장된 당이 더 많을수록 더 잘 합성됩니다. 햇빛이 많을수록 단풍색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선명한 단풍의 색을 이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로 지구 온난화 때문인데요. 온도가 따뜻해지면, 당연히 나무는 잎을 늦게 떨어뜨리게 되겠죠. 현재는 9월 말이지만 길게 보면 10월 초ㆍ중순으로 단풍이 드는 시기가 점점 늦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사량이 적어지는 겨울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색은 지금만큼 또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전망해 2100년까지 전세계 평균기온이 1.5~2도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추가로 일주일 정도의 단풍 지연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 산림청은 2010년 약 70%의 수종(樹種)이 고도가 높은 산 속이나 북쪽 캐나다로 이동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조금씩이지만 단풍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입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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