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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18] 내 믿음만이 현실이라면

바람아님 2018. 11. 28. 07:12

(조선일보 2018.11.28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시간'을 꼽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노력하고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하루 단 24시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 중 거의 3분의 1을 '잠'이라는 무의식 상태에서 보낸다.

인간은 왜 잠을 자는 걸까? 여전히 과학적으로 완벽히 검증된 답은 없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잠자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호메로스는 "잠은 죽음의 쌍둥이 형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밤마다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우리는 '꿈'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롭고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반대로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우리는 매일 밤마다 꿈을 꾸는 것일까?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도대체 꿈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실에선 언제나 세상을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꿈속에서의 경험은 현실을 무시하고도 가능하다.

나 자신의 행동과 판단이 미치는 영향이 다음 선택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꿈속에서의 판단은 오로지 내 선입견과 믿음만을 기반으로 한다.

현실은 내 믿음을 바꿀 수 있겠지만, 꿈속에서는 언제나 내 믿음이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착시 현상을 가지게 된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며 핸들을 교정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꿈은 두 눈을 감고 오로지 기억과 믿음을 기반으로

운전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포퓰리즘,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게임….

왼쪽과 오른쪽 모두 까마득한 낭떠러지기를 지나가야만 하는 대한민국.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을 기반으로 한, 현실을 위한 그리고 현실을 통해 검증된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는 어쩌면 지금 케케묵은 과거의 믿음과 기억만을 되새기는 깊은 꿈속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