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36] 돛대 부러진 사법부

바람아님 2019. 1. 29. 12:04

(조선일보 2019.01.29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베니스의 상인'에서 법관으로 변장한 포샤는, 안토니오가 빌린 돈을 기일 안에 못 갚았으니

차용증서에 명시된 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에서 살 한 파운드를 베어내겠다고 달려드는 샤일록에게,

꾸어준 돈의 3배를 받고 '자비'를 베풀라고 호소한다.

그래도 살점으로 받아야겠다고 우기자 "그렇다면 계약서상 네게 그의 피를 흘릴 권리는 없으니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야 한다"고 판결한다.

법조문에 완벽하게 충실한 동시에 기막히게 '창의적인' 판결이었다. 복수심의 화신(化身) 샤일록을 증오한 관객에게는 물론,

그의 설움을 지극히 가슴아파한 필자에게도 샤일록이 살인자가 되는 것을 막아 준 고맙고 감동적인 명(名)판결이었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이 법관'튀는 판결'에 토를 달지 말라고 주문한 것은 이런 창의적 해석을 장려하자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김명수 사법부의 '튀는' 판결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 권한에서 월권한 것이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前) 정부 인사들에게 언어도단의 형량을 '때린' 것과 국민의 형평성 감각이 납득하기 어려운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따위이다.


지금 검찰이 수사한다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끌었던 대법원 판결은 이석기 사건, 일제 징용 등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위법이라는 것일까? 행정부와 판결 내용을 협의했다는 의혹 때문이라는데 판사가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없으니, 더욱이 국가 안전과 국제 관계 문제는 해당 부서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참작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지금 문재인 정부의 극도로 독단적인 중대 정책들이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60조원 투입이 예상되는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토목 사업 수십 건, 5000만 국민 생명 값이 된 1200억~1400억원

주한 미군 주둔비 추가 분담 거부로 안보 위기 초래, 중산층을 몰락시킬 부동산세   폭탄,

국민연금 지분을 활용한 대기업 의결권 행사 기도(企圖) 등…. 모두가 가히 전횡(專橫)이다.

이에 비해 양승태 사법부가 독단적인 판결 대신 고민하며 행정부 의견을 참고한 것은 불가피하고, 합당한 일이 아니었을까?

전임 대법원장 구속으로 나라의 품격이 한없이 추락했다.

국민이 사법부를 위해 상복(喪服)을 입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경, 비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