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17-11-06)
<에너지 빅뱅> 펴낸 이종헌 <플랫츠> 서울특파원
“석유패권 약화·소비자 주도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기’
석탄·원자력에서 신재생·천연가스 이동은 세계적 대세
‘한반도 가스관’ 사업 경제성 있고 북에 산업부흥 기회
동북아 슈퍼그리드로 대륙 연결·지정학적 리스크 소멸”
이종헌 <플랫츠> 서울특파원.
촛불이 바꾼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이다. 문재인 정권은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원자력발전은 축소’라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불만과 반발은 여전하다.
1천억원에 이른다는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비용, 원전 수출 등으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 에너지 문제는 원전에 대한 찬반이 전부일까?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운영하는 에너지 정보업체 <플랫츠>(Platts)의 이종헌 서울특파원은 최근 펴낸
<에너지 빅뱅>에서 한반도 평화까지 아우르는 좀더 근본적이고 대담한 에너지 정책 전환을 주문한다.
2015년 손지우 애널리스트와 함께 <오일의 공포>를 펴내 장기 저유가시대 개막을 예측해냈던 이 특파원에게서
환경·북핵 문제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전을 계기로 에너지가 우리 사회 핫 이슈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도 에너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인류의 주 에너지원이 석유에서 천연가스와 신재생으로 넘어가고 있다.
또 에너지 시장의 중심이 아시아로 바뀌고 있다. 중동과 미국, 러시아 등 산유국들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에너지 전환도 이룰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온 것이다.”
-천우신조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석탄발전 비중 축소가 급선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노후 석탄발전소 10기의 가동 중단을 선언했는데,
그 용량이 3GW다. 그런데 올해 당진9호기(1GW)부터 2022년까지 18GW 규모 석탄발전소가 완공된다.
2011년 정전 사태 뒤 정부가 무분별하게 허가를 내준 탓이다.
전기의 40%를 석탄으로, 30%를 원자력으로 만드는데 전기차가 도로를 채우면 뭐하나.
전기차는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지만, 전기차를 돌리기 위해 석탄발전소는 더 많은 오염물질을 내뿜어야 할텐데.”
-대안은?
“물론 신재생이 답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토가 좁고 햇빛(태양광)이나 바람(풍력)이 질이 떨어진다.
신재생을 키워가되 당장은 오염물질 배출이 훨씬 적은 천연가스 발전을 병행해야 한다.”
-석탄과 원자력이 가진 경제성을 떨쳐내기 쉽지 않을 텐데?
“그게 문제다. 하지만 발전비용 차이가 빠르게 줄고 있다.
셰일혁명을 이룬 미국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석탄보다 20%정도 싸다. 원전도 밀어낼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액화시켜 배로 들여와야 해 수입단가가 비싼데, 2014년 상반기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 양)당 17달러였던
도입단가가 올해 6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천연가스를 병행해 신재생 발전을 늘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우리나라 신재생 발전비율 2~4%는 유럽은커녕 일본(13%)과 중국(25%)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신재생에너지 최근 동향과 2022년까지 전망을 분석한 ‘재생에너지 전망보고서 2017’을
펴냈는데, 이를 보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4%에서 2022년 30%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신재생 발전비중을 20%로 높이는 목표를 세웠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두배 가까이 상향 조정된 수치다.
-현재 원자력을 둘러싼 갈등이 큰 상황인데.
”원자력은 놀라운 에너지다. 우라늄 1g은 석유 1800ℓ, 석탄 3t과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1
㎾h당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10g으로 석탄(991g), 천연가스(549g)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원전이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날 경우 국가 존립을 흔들 정도로 위험하다.
60년 넘는 역사 속에 원전 사고는 단 세차례였지만, 세계가 받은 충격은 얼마나 큰가?
또 폐연료봉 같은 고준위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원전 5곳 가운데 세 군데가 한국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2030년까지 신재생발전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3020계획’을 발표했지만,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중국만 해도 이미 전기의 20% 이상을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발전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설득이나 타협이 안되는 분위기 같은데.
“한쪽에서는 경제성만, 다른쪽에서는 재난만 이야기하는데 참 답답하다.
에너지 시장 상황과 세계적인 흐름을 봐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뒤 거의 모든 나라가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했고,
실제 원전을 계속 짓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등 몇 나라에 불과하다.”
-천연가스를 주 발전에너지로 삼으려면 수입량을 크게 늘려야 할텐데.
“안정적인 대량 공급을 위해서는 우선, 셰일혁명으로 생산량이 폭증한 미국 등으로 도입 국가를 다변화해야 한다.
또 한반도 가스관을 연결해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들여와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합의했었고, 2011년 김정일 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가스관
북한 통과에 동의했다. 각각 양해각서까지 체결됐다. 아시아 에너지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러시아는 2015년에도
북한과 가스관 건설을 논의하는 등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두에게 윈윈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한 핵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져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스관 사업이 핵문제를 풀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가스관을 차단하면 어떻게 하나’란 우려가 나올텐데.
“물론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무기화할 것이라는 걱정보다는 북한이 그렇게 하지 못
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 가스 인도 지점을 북-러 국경이 아니라 휴전선으로 해 러시아가 북한 구역 통과를
책임지도록 하고, 북한에 줘야 하는 통과료를 전기로 지불하고 산업을 부흥시키는 데 쓰도록 하는 등 방법이 있다.
가스관 사업을 북한의 석유화학이나 철강업체, 조선소 등과 연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게 안정화되면 북한도 함부로 가스관 차단에 나설 수 없다.”
-북한이 과연 응하겠나.
“국제 기준에 비춰보면, 통과 물량의 5-10% 정도를 통과료로 낸다.
이게 3억~5억달러 수준인데, 북한으로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거액이다. 게다가 1990년대 북한 산업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 부족이었다. 자체 생산이 가능한 석탄과 수력발전에만 의존하다 전기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산업 전체가 거의 마비됐다.
지난해 북한의 1인당 전력사용량은 630㎾h로 우리나라의 15분의 1 수준인데, 1990년(1095㎾h)에 비해 40%나 감소했다.
발전, 송배전 설비 노후화도 심각하다. 여기에 유엔 제재에 따라 올해 9월부터 한해 원유 도입량이 1990년(1847만배럴)의
10분의 1 수준인 200만배럴로 줄어들게 된다.
-1990년대 핵개발 동결 대신 경수로 발전소를 건설해주기로 했다가 좌초된 적도 있다.
“경수로 사업이 미완으로 끝났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가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너지만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유인책은 없다.”
-한반도 가스관 다음은 뭐가 있을까?
에너지 빅뱅 (에너지가 세상의 판을 바꾼다!)
저자 이종헌/ 프리이코노미북스/ 2017.10.23/ 416 p
325.211-ㅇ883ㅇ/ [정독]인사자실(2동2층)
“몽골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로 전력을 생산해 이를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 소비국으로 보내는 슈퍼그리드(광역전력망)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해 3월 한전과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러시아 국영전력공사가 양
해각서를 맺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마쳤다. 지구촌 마지막 냉전의 화약고인 휴전선을
지나는 가스관과 송전선은 에너지와 환경문제를 풀 수 있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소멸시킬 수 있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가스관, 송전선을 따라 에너지가 흐르고 그 옆으로
자율주행 고속도로가 만들어져 전기차로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내달릴 수 있어야 한다.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슈퍼그리드를 구축해 친환경 연료로 무한정 전기를 만들어
그 전기차들을 달리게 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
한반도의 생존과 번영은 에너지에 달려있고, 그 핵심은 연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주최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동북아 슈퍼그리드로 세계 최대 에너지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는 유럽연합(EU)처럼 동북아경제공동체와 다자 안보체제로
발전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며 각국 정상에 관련 협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도 지난 1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빛가람 국제전력기술 엑스포’(빅스포)에 참석해
“한·중·일 공동연구 결과 기술력·경제성 모두 타당하다고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와 관련해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3~8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환익 한전 사장 등을 만나 관련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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