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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축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 국내 출간

바람아님 2019. 2. 19. 21:32



'야만의 세기' 이겨낸 폴란드 3대 가족사

올가 토카르축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 국내 출간


(한국경제 2019.02.10 은정진 기자 )

 

태고의 시간들
저자 올가 토카르축/ 최성은역/ 은행나무/ 2019.01.25/ 380 p


올가 토카르축 장편소설 중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된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은

그를 폴란드 국민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책이다. 1996년 출간돼 폴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 중 ‘독자들이 뽑은 최고 작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2007년 내놓은 장편소설 《방랑자들》 영어판인 《Flights》로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세계 문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태고의 시간들》은 1910년부터 19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폴란드 키엘체 인근의

가상 마을 ‘태고’에서 삼대에 걸쳐 살고 있는 니에비에스키 가족들 이야기다. 태고는 폴란드어로 ‘아주 오래된

원시의 시간’을 뜻한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있는,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중첩된 공간이자

시공을 초월한 ‘열린공간’이다.


책은 ‘~의 시간’이라는 소제목으로 된 조각글 84편으로 구성됐다.

그 주체는 등장인물인 니에비에스키 가족과 이웃들은 물론 동식물, 신(神), 게임, 죽은 자, 사물, 심지어 버섯균까지

다양하다. 장마다 이들의 독립적 이야기가 2~3페이지씩 구성돼 있어 짧은 산문을 보듯 읽기 수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설에서 보이는 연대기적 흐름 대신 각 에피소드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넣어 서로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뒤얽히도록

구성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주체’로서 각자 개별적인 삶의 방식과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올가 토카르축


허구와 현실을 적절하게 중첩한 점은 소설 속 큰 특징 중 하나다.

20세기 100년간 폴란드 영토에서 실제 일어났던 야만적인 사건들을 촘촘히 배치했다.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로부터 점령당했던 삼국 분할기(1795~1918년)

막바지인 20세기 초를 시작으로 1차 세계대전(1914~1918년)과 2차 세계대전

(1939~1945년)의 참상을 담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해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거나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후 사유재산

국유화 및 엄혹한 정부 감시를 받던 사회주의 냉전 시대(1949~1989년)와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과 체제전환(1989년)까지 냉혹했던 현실을 반영했다.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까지를 그려낸 《아리랑》과 분단 역사를 담은 《태백산맥》, 경제발전 역사를 풀어낸 《한강》 등

지난 100년의 한국사를 대하소설로 엮어낸 조정래 작가 장편소설들을 한 권으로 집약시킨 것을 보는 것 같다.


유독 여성들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담아낸 저자는 이번 소설에서도 탄생부터 성장, 출산, 늙음,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역사엔 기록되지 않았던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성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



[올가 토카르축]

세계는 우연이 지배하는 게임… 인간은 정말 보잘것없어

2018년 맨부커상 수상한 작가,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 국내 발간

(조선일보 2019.02.19 백수진 기자)



지난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축(57)의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최성은 옮김)은 가상의 폴란드 마을

'태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삼대에 걸친 니에비에스키 가족과 그 이웃뿐 아니라 동·식물과 커피 그라인더 같은 사물, 신과 천사들까지 짤막한 글의

주인공이 된다. 기이하고 신화적인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1·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공산 정권의 지배까지

겪으며 야만의 시대를 건너간다. 폴란드의 비극을 환상적으로 풀어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비교되기도 했다. 출간을 기념해 이메일로 만난 토카르축은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겪어온 폴란드인들은 역사에

유달리 관심이 많고, 역사를 돌이켜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올가 토카르축작가는 세계를 우연이 지배하는 게임에 빗댄다.

토카르축은 "살면서 맞닥뜨린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선택을 곱씹어보면,

우연의 섭리를 실감한다"면서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의 광대함과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에

압도당한다"고 했다. /은행나무


―소설은 '~의 시간'이라는 제목의 조각글로

나뉘어 있다.


"이 소설을 쓸 때,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시간이 서로 뒤엉켜 있는 실타래가 떠올랐다.

그 시간의 실타래를 풀어서 현실을 직조해보고

싶었다. 현재와 시간적 거리가 있기 때문에

신화화가 가능해졌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기이하고 신화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술 취한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세상의

이치를 체득한 크워스카는 홀로 출산하면서

예언의 능력을 얻는다.


"크워스카는 데메테르와 같은, 여신의 신화에

뿌리를 둔 인물이다. 가부장적 세계에서는

누구나 동경할 수밖에 없는 강력하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성을 지닌 인물이다.

소설에서 캐릭터를 다룰 때 단편적이지 않고,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토카르축은 바르샤바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치료사로 일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산 정권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스물여덟이던 1989년 첫 여권을 받았다. 여행에 영감을 받아 쓴 '방랑자들(Flights)'로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다. 당시 한강의 소설 '흰'도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심리치료사 일은 까다롭고, 힘들고, 부담이 컸다.  반면 글쓰기는 단 한 번도 날 지치게 한 적이 없다.

글쓰기의 매력은 다른 존재, 다른 사람과 교감하려는 시도에 있다. 글을 쓴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을 경험할 수 있고,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


―공산 정권하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어땠나.


"미처 많은 걸 인지하지 못해서 탄압받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 갇혀 있는 듯한 구속감을 느끼곤 했다.

세상은 항상 어딘가 멀리 있는 것 같았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래서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지자마자 그토록 열심히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됐는지도 모른다."


―2006년에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채소를 듬뿍 먹는 한국 음식과 사랑에 빠졌다. 용문사에서 혼자 템플 스테이도 했는데 정말 특별한 체험이었다.

광활한 한국의 산야와 현대적인 서울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또렷한 대비도 경이로웠다."


―불교의 어떤 점이 끌렸나.


"불교 철학에서 내리는 진단은 명료하고 정직하다.

모든 것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려면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의 총체라는 관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교에서는 공감과 연민을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약이다."

(인터뷰 번역: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