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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電, 홍역 백신… 팩트는 안 보고 편견에 떠는 공포

바람아님 2019. 3. 10. 08:51

(조선일보 2019.03.09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사실'이 아닌 막연한 '느낌'을 진실이라 여기는 비합리적 본능
사건 발생하면 희생양부터 찾고 선악과 빈부 등 이분법으로 나눠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등 지음|이창신 옮김|김영사|474쪽|1만9800원


2011년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자 세계는 경악했다.

'방사능에 피폭돼 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fact)은 공포의 무게에 깔려 보이지 않았다.

당시 사고 여파로 죽은 사람은 1600명.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는 과정에서 정신·육체적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라 방사능 공포"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희생자 수가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것처럼 왜곡돼 세상에 퍼져 나갔다.

'공포에 사로잡힌 이는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에 귀 기울이는 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사고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사실 충실성)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뜻한다.

스웨덴 출신 의사이자 통계학 전문가인 저자 로슬링(1948~2017) 박사가 제안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무지와 싸운다는 모토를 내걸고 2005년 '갭마인더 재단'을 설립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믿는 확증편향과 탈진실(post-truth)에 맞서자고 역설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오해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를 만들어 풀어보게 했다.

정답률은 고작 16%. 무작위로 찍어도 나오는 통계적 정답 확률 33%에 훨씬 못 미쳤다.

'세계 인구 중 전기를 공급받는 사람 비율은?' 같은 질문에

사실이 아닌 막연하고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답을 골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게 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 10개를 열거하고 이 본능 요소들이

어떻게 인간을 오도하는지 설명한다.


방호복과 방독면 차림을 한 일본 도쿄전력 직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지나가고 있다. 저자는 피폭 사망자 제로인 원전 공포보다 설사라는 현실의 위험과 싸우라고 지적한다.
방호복과 방독면 차림을 한 일본 도쿄전력 직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지나가고 있다.

저자는 피폭 사망자 제로인 원전 공포보다 설사라는 현실의 위험과 싸우라고 지적한다. /AFP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사례는 이 10개 본능 중 '공포 본능'에 해당한다.

공포 본능은 위험 평가를 왜곡함으로써 위험하지 않은 것을 무서워하게 한다. 홍역 예방주사로 인한 부작용이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 겪게 될 아이의 고통보다 크다고 잘못 평가하는 것을 대표 사례로 꼽는다.

공포와 위험을 혼동하기 때문에 위험을 없애는 데 써야 할 사회적 자원이 엉뚱한 곳에 낭비된다.

저자는 "지진이나 항공기 사고, 사망률 제로인 원전 사고 등에 대비하기보다 해마다 설사로 죽을 위험에 처한

수백만 명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는다.


인간은 불행한 사고가 터졌을 때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한다.

이런 '비난 본능'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을 수포로 돌린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비난할 희생양을 찾느라 정작 시스템 잘못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빚어진 갈등과 혼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사고가 터지면 악당을 찾기보다 원인을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간극 본능 때문이다.

여기에 극적으로 사고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더해져 매사 나쁜 방향으로 드라마를 만든다.

세상을 선과 악, 부자와 가난한 자 등으로 나누고 양 극단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여길 뿐 아니라

이를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팩트는 외면한다.

전 세계 만 1세 아동의 80%가 예방접종을 받는다는 것도, 남녀의 교육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멈추지 않는 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낙관적인 통계와 도표가 넘치는 책.

빌 게이츠는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시각을 심어준다"고 평가했다.

저자 자신은 신중하다. 그는 "세상을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로 보자"고 제안한다.

상태는 위중하지만 모든 수치로 볼 때, 아이가 호전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발전의 증거로 전보다 잘 먹고 잘 쓰는 것만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100만명당 연주 가능한 기타 보유 대수가 1962년 200대에서 2014년 1만1000대로 늘어났으니

삶이 풍성해진 것 아니냐며 감성에 호소하는 통계도 곁들인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도 덤으로 얻는다. 



같이 읽을 거리 :


빌 게이츠가 미국 모든 대학 졸업생에게 선물한 책.
https://brunch.co.kr/@rickeygo/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