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16 김성현 기자)
계획된 불평등
마리 힉스 지음|권혜정 옮김|이김|432쪽|2만2000원
2차 대전 직후 영국에서도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들이 쏟아졌다.
전시(戰時)에 영국 정부는 18~60세 여성 전체를 징집 대상으로 삼았다.
남성들이 전방으로 떠난 사이 기혼·미혼 여성들이 공장과 사무실에 투입됐다.
금속판 작업, 판금, 용접 등 공학 기술도 모두 배우도록 했다.
1943년에 20~30대 미혼 여성의 90%, 기혼 여성의 80%가 전쟁 지원에 나섰다.
전쟁이 여성의 사회 참여를 낳았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역설적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친숙한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암호 해독을
하는 동안 그 정보를 도청하고 판독하고 기록하는 것도 여성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여성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남녀 '동일 임금'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둬야 하는 악습(惡習)도 여전했다.
미 일리노이공대 교수인 저자는 듀크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전기공학과에서 컴퓨터 시스템 관리자로
근무했다. 문·이과를 넘나드는 '이색 경력'을 살려서 이 책에서도 전후 영국의 기술 경쟁력 약화와 여성 차별의 상관관계를
조목조목 살핀다. 전쟁 당시 충분히 교육과 훈련을 받은 여성 전문 인력들을 일터에서 쫓아내거나 저임금·임시직의 굴레에
묶어두는 바람에 전산(電算) 분야에서 미국에 1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2차 대전 당시 컴퓨터를 이용한 암호 해독 작업에 투입된 해군 여군 부대원들. /도서출판 이김
역사와 과학을 넘나드는 서술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책을 넘기고 있으면
1979년 YH무역 농성 사건 등이 떠오르면서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닌 듯한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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