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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원숭이 외 2

바람아님 2019. 3. 17. 18:40


발효한 과일 먹으며 진화한 인간, 그래서 술이 끌린다?


(조선일보  2019.03.16 이한수 기자)


'술 취한 원숭이'술 취한 원숭이|로버트 더들리 지음|김홍표 옮김|궁리|246쪽|1만5000원


인간은 술을 마시는 유일한 영장류 동물이다.

영국 생태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종으로 본 것처럼 술 마시고

취하는 인간은 '술 취한 원숭이'종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2000년 과일을 먹는 영장류와

알코올 섭취의 진화적 기원을 다룬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학계 최초로 제시했다.


과일 먹는 대형 동물(과식동물)은 대개 열대우림 지역에서 산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도 마찬가지였다.

밀림에서 영양가 높고 맛있는 과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무 이파리를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지만, 이파리는 영양가가 적고 소화하기 어렵다.

과일도 대개는 익지 않은 채 푸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과일 익을 때를 아는 일은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다.


잘 익은 과일에 함유된 당은 자연 상태에서 효모와 만나 알코올을 만든다.

과식동물은 과일을 섭취하면서 일정한 양의 알코올도 함께 섭취한다.

저자는 약 1억년 전부터 일부 과식동물이 멀리서도 알코올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말한다.

알코올이 함유된 과일을 먹는 영장류의 섭식 습관은 인간의 조상에게 이어졌고, 인간이 술에 끌리는 까닭은

오랜 기간 진화한 생물학적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알코올은 항균 성분이 있어 감염성 세균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 이상으로 알코올을 소비하는

'술 취한 원숭이'는 교통사고, 가정 폭력, 간경화·조기 사망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오른손잡이 50여년… 이제 왼쪽을 써야 할 때


(조선일보 2019.03.16 백수진 기자)


'익숙한 길의 왼쪽'익숙한 길의 왼쪽|황선미 지음|미디어창비|204쪽|1만3000원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의 산문집.

한국 창작동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29개국에 번역돼 세계 곳곳에서 초청받는

작가가 됐지만, 자신은 "두 아들의 엄마. 서울에 사는 중년. 콤플렉스 덩어리.

외로운 사람"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50대에 자신을 이루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 작가는 오래된 통증을 통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본다.

어린 시절 뼈가 부러지면서 구부러진 채 뭉툭해진 새끼손가락부터 고질적인 구내염,

흔들리는 어금니, 목 디스크로 시작해 어깨·팔·손끝까지 통증이 번지며 완전히

망가져 버린 오른쪽. 그는 그동안 불균형적으로 오른쪽을 혹사해왔음을 깨닫는다.

"오른손잡이로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부터는 왼쪽의 삶에는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서툴고 느리고 두렵고 어색할 테지만 왼쪽 길에도 역시 도전할 만한 뭔가가 있지 않겠나."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풀리지 않은 응어리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엄마와 아버지.

그들과 다르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절들.

장녀의 희생을 강요하며 공부하지 말라고 아궁이에 가방을 쑤셔넣었던 엄마와의 갈등까지 털어놓는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목소리와 닮아간다는 오빠의 말을 듣고 버럭 하다가도

"나는 끝내 나이고 싶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 이게 내가 사는 방법"이라고 추스른다.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뭉클함을 주는 그의 동화처럼 결점 속에서도 빛나는 것들을 찾아낸다.

"약한 것들로 이루어져 여기까지 오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자신을 토닥인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수학적 질서가 있다

 
(조선일보2019.03.16 채민기 기자)

'자연의 패턴'자연의 패턴|필립 볼 지음|조민웅 옮김|사이언스북스|288쪽|2만9500원


자연은 왜 아름다울까.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저자에게 단도직입으로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패턴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무질서, 무작위처럼 보이는 자연현상도 면밀히 관찰하면 그 안에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

인간은 밤이 지나면 해가 다시 뜨고, 겨울 다음엔 봄이 온다는 규칙을 발견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온 본능적 '패턴 탐색자'다.

그렇기에 자연에 숨은 패턴이 인간 본성의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는 이야기다.


규칙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곳에도 수학적 질서가 있다.

예컨대 조약돌의 모양은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고 불규칙하다.

하나의 조약돌도 구(球)와 달리 표면 각 지점의 곡률이 다른데,

여러 지점의 곡률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어떤 조약돌이든 같은 곡선을 그린다.

동일한 곡률 분포로 표현되는 평균적 '조약돌 모양'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의 패턴은 대칭이다. 대칭성은 여러 형태로, 여러 장면에 숨어 있다.

가령 잔잔한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솟아오를 때 처음엔 어느 방향에서 봐도 완벽한 대칭이다.

그러다가 솟아오른 물기둥 꼭대기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면 불가사리처럼 일정 방향에서만 대칭을 이루는 형태가 된다.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솟아오르는 장면.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솟아오르는 장면. 처음엔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모양이 같지만

가장자리에서 물방울이 갈라져 나오기 시작하면 일정 방향에서만 대칭을 이루게 된다. /사이언스북스


자연현상을 대칭, 프랙털, 나선, 흐름과 혼돈, 파동과 모래 언덕, 거품, 결정(結晶)과 타일, 균열, 점과 줄이라는

패턴으로 설명한다. 나비의 날개부터 우주까지 넘나든다.

과학 비전공자에겐 다소 버거운 내용도 있지만 지루하지 않다.

 300장의 사진을 살펴보는 동안 자연의 신비와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