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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공장 문 닫던 날 시작된… 좌절과 극복의 드라마

바람아님 2019. 3. 16. 10:50

(조선일보 2019.03.16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2008년 美 제인스빌 GM공장 폐쇄 후 일자리 9000개 사라져
주민·지역공동체, 고난과 싸워


'제인스빌 이야기'제인스빌 이야기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이세영 옮김|세종서적|508쪽|1만8000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2008년 12월 23일 미국 위스콘신주(州) 공업도시 제인스빌에 있던

GM 자동차 조립라인이 멈춰 섰다. 마지막으로 생산된 자동차 타호가 미끄러져 나오는 순간,

노동자들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1

923년 쉐보레를 생산한 이래 85년간 이 도시에 풍요를 선사했던 GM 공장이 그렇게 문 닫았다.

퓰리처상 수상 경력을 가진 워싱턴포스트 기자 골드스타인은 GM 공장 폐쇄 후 7년간

인구 6만여 명의 소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했다.


시급 28달러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 후폭풍은 강력했다.

연쇄 부도와 폐업이 잇따르며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을 포함해 일자리 9000개가 사라졌다.

일과 후 자녀들 운동경기를 보러 가고 주말에 외식을 즐기던 중산층 삶이 무너졌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집들이 매물로

쏟아졌고 자살률은 두 배로 치솟았다. 지역사회는 일자리를 지킨 자와 빼앗긴 자로 나뉘어 반목했다.


저자는 이 상처받은 도시를 풍요로웠던 옛날로 되돌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지역 공동체가 발버둥친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무방비로 읽다간 가슴 베일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장 폐쇄 후 다른 도시로의 이동 배치를 받아들인 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자신들 처지를 'GM 집시'라고 했다.

GM 집시가 된 후로 맷은 집에 있는 아내와 스마트폰으로 낱말게임 하는 취미가 생겼다.

'당신 차례야'란 아내의 문자를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다. GM 집시의 자녀들은 주말 약속을 하지 않는다.

가장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을 녹화했다가 일요일 밤 아빠와 소파에 앉아 함께 보기 위해서다.

GM 집시가 되길 포기한 사례도 눈물겹다. 아빠가 "홀로 된 노모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제인스빌에 남아 시급이 절반에

불과한 허드렛일을 시작하자 아내와 딸들은 식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다.


제인스빌 파커고등학교 교사들은 '파커의 벽장'을 만들었다. 벽장 속엔 기증받은 치약·청바지·통조림 등이 가득하다.

자존심 때문에 가난을 숨기는 아이들을 찾아내 벽장 앞으로 데려가기 위해 교사들은 제자들 표정을 관찰하고

페이스북까지 들여다본다. "저렴하게 머리 손질할 데 없느냐"고 무심히 쓴 한 문장도 놓치지 않아야 궁지에 몰린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사회복지사 앤은 집 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위해 '프로젝트 16:49'를 시작했다.

하교 후 다시 등교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 16시간여 동안 안식처를 마련해주기 위한 모금 운동이다.



2008년 12월 23일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GM 자동차 공장이 폐쇄됐다. 노동자들이 이날 마지막으로

생산돼 조립라인을 빠져나오는 타호 자동차를 아쉬움 속에 지켜보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실업수당과 해직급여, 재교육 학비 지원, 건강보험 등이 실직 노동자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도 관찰한다.

공적 지원 시스템 효과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해고 노동자의 전직을 돕는 직업훈련이다.

놀랍게도 실직 후 재교육을 받은 이들보다 받지 않은 이들 취업률이 더 높았다.

심지어 재교육 수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취업한 쪽의 수입이 교육받고 취업한 이들보다 높았다.

정책 당국이 고민해야 할 숙제다.


제인스빌은 이 모든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까. 제인스빌 GM 공장의 고용 규모는 1971년 71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앞을 내다본 이들은 "이제 산업을 다각화하자"고 주장했지만, 주민 대다수는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믿는 쪽을 택했다.

오일 달러만 파먹다가 유가 하락으로 무너진 베네수엘라의 전조가 그곳에 있었다.


제인스빌의 상처는 이제 많이 아물었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실업률은 공장 폐쇄 7년 만에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4%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대부분 저임금 일자리였고, 중산층의 삶을 보장했던 제조업 도시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선소와 자동차 산업이 깊은 불황에 빠진 거제·군산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

고난 속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사랑을 키워가는 가족들을 응원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