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19 이지훈 세종대 교수)
[이코노 서가(書架)]
최재붕 교수 '포노 사피엔스' "디지털 문명 기준 새로 만들어야"
'포노 사피엔스'
1928년 서울시(당시 경성부)가 버스 서비스를 시작하려 하자 인력거꾼들이 대거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고, 계획은 백지화된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에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버스 운행도 시작됐고 인력거꾼은 결국 사라진다.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 교수는 택시와 우버의 다툼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본다.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이 뇌이자 손인 신인류를 말한다. 그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을 수 없다면 그들이 선택한 우버며 에어비앤비 역시 막을 수 없다.
한국에선 여전히 불법인 우버에 대해 201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혁신적인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다면 서로 공정하게 경쟁해야 다.
따라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우버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혁신으로
봐야 하고 그래서 합법이다."
마차를 파괴하고 선택받은 택시가 이제 와서 보호를 요청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자,
항상 퍼스트무버 산업을 만들어 왔던 미국의 정신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저자는 집요하게 묻는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 그러하듯 고통스러워도 새로운 문명의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준에 눈을 감고 규제의 만리장성으로 갈라파고스 섬이 될 것인가.
포노 사피엔스가 주도하는 디지털 문명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문명의 교체에 필적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위기가 온다.
조선이 망한 이유는 대륙에 강력한 신문명이 도래했다는 것을 모른 채 우리끼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갈등은 제조업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제조업 중심 사회는 경영자와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노동자 편이나 경영자 편으로 갈려 목소리 높여 싸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정치권은 디지털을 근간으로 문명의 기준을 재설정하는 데 힘을 쏟아붓고 있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기회는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저자는 사회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이 시대 문명의 기준을 새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기준은 세계와 맞춰야 하고, 거기서 진보와 보수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책 당국자는 지금이 문명의 전환기라는 사실에 동의하는가.
해묵은 논쟁을 접고 함께 혁명 시대의 생존 전략을 짜볼 생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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