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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세계사/ 기다림의 칼

바람아님 2019. 3. 30. 20:40


전쟁 아닌 무역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조선일보 2019.03.30  신동흔 기자)


무역의 세계사무역의 세계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박홍경 옮김|라이팅하우스2019.04.10|692쪽|3만5000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60년 동안 구세계와 신세계의 곡물 가격은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영국 리버풀과 미국 시카고 곡물 시장의 밀 가격 그래프가 사상 처음으로

같은 시기에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 것이다. 소고기·구리·철·섬유도 마찬가지였다.

기차와 대형 화물선 같은 운송 수단이 발달하고 통신 기술이 보급되면서 등장한 '동조' 현상.

그 끝에 1차 대전과 대공황이라는 전무후무한 경제적 충격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역이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 석기시대 장거리 교역부터 인터넷 시대까지 조망한 책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교역을 위해 수에즈 인근에 운하를 팠고, 런던 상인과 중국 한나라 수도 장안의 비단상이 연결돼 있었다.

낙타 등 위에 얹혀 아라비아숫자와 복식부기, 대수학 같은 인류 문명이 퍼져 나갔다.

저자는 "인류는 이웃과 부딪힐 때마다 '무역할 것인가' '침략할 것인가' '보호할 것인가' 선택에 직면했다"면서

"무역을 통해 이웃이 죽는 것보다는 살아 있을 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했다.

금융이론가 겸 경제사학자인 저자는 백여년 전 땅값과 인건비, 원자재가, 운송비 데이터 등을 종합해 대공황이

필연적 현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베링해협을 둘러싼 미·러 긴장, 믈라카해협에서의 미·중 갈등도 철저히 경제적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세계는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어느 순간 '평평'해진 것이 아니라 교역을 통해 서서히 평평해져 왔다.

2008년 출간된 책이지만 미·중 무역 전쟁을 맞아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박훈의 역사 서재] 克日 하려거든, 도쿠가와를 읽어라

 
(조선일보 2019.03.30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기다림의 칼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한국인처럼 일본에 대해 막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지식이 빈약한 경우는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일본 특히 일본사 공부는

황량하다. 정말 극일을 하고 싶다면 그들의 역사를 아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텐데 말이다.

나는 극일·반일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일본사에는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극일을 원하는 건가 의심한다.


드물게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 인물도 대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토 히로부미처럼 한국사와 악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나마도 전자는 이순신, 후자는 안중근과의 접점 부분만 안다. 우리에게는 유감스럽지만 히데요시는 일본 근세,

히로부미는 일본 근대의 '파운더(founder·건설자)'다. 새로운 일본 만들기가 그들 손으로 이뤄졌다.

임진왜란도, 한국 병합도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명량해전도, 하얼빈 의거도 열심히 공부해야겠지만 그것만 알아서는

일본을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극일도 할 수 없다.


기다림의 ì¹¼기다림의 칼


다행히 소설 '대망' 덕분인지 도쿠가와 막부를 수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래도 지명도가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박선영 옮김)가 쓴 '기다림의 칼: 100년의 잔혹 시대를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

(21세기북스)는 '근세'라는 시대의 성격, 이에야스의 업적이 갖는 역사적 의미,

그의 인간적 면모와 독특한 리더십을 흥미롭게 전해준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혁신적 정책들을 이에야스는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안착시켰다.

정책은 혁신적이었지만 실행 과정은 노회하고 우회적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국시대 무장 중에서도 출전 경험이 가장 많은 장수 중 한 명이었다.

지휘할 뿐 아니라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 병사처럼 싸웠다.

전투에도, 정책에도 윗사람이라고 뒤로 빠지지 않고 현장에서 '터프하게 붙었다'.

지금 일본 사회의 뿌리는 도쿠가와 시대에 있다. 메이지 유신도, 근대화도 그 뿌리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니 현대 일본을 깊게 이해하려면 도쿠가와 시대를 알아야 하고, 그 창설자인 이에야스를 공부해야 한다.

내가 수십년 동안 만나 온 수많은 일본 사람은 소리 높여 '반일!'을 부르짖는 사람보다 이에야스를, 사카모토 료마를,

도조 히데키를 읽고 아는 한국 사람을 더 평가하고 경계했다. 예외 없이, 하나같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