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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16] 봄은 고양이로다

바람아님 2019. 4. 10. 09:36
조선일보 2019.04.09.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이장희 시인은 봄을 아예 고양이라고 읊었다. 달포가 지나도록 밤마다 골목 어귀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질러대던 암고양이들도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는' 동그란 눈을 내리깔고 나른한 봄기운에 젖는다.

세계적으로 약 6억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고양이가 인간과 동거한 지는 약 9500년으로 개에 비해 짧지만,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반려견의 수와 맞먹거나 앞선다. 2017년 집계에 따르면 이웃나라 일본에는 개가 892만 마리인 데 비해 고양이는 952만6000마리에 달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으로 볼 때 나는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반려묘가 반려견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워낙 독립적이라 기껏 먹여주고 재워줘도 제 맘이 내키지 않으면 아무리 불러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가 과연 인간의 말귀를 알아듣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개는 인간과 살며 인간의 마음을 읽고 다독이는 공감 능력을 갖췄다.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연구가 덜 됐지만 적어도 반려인의 목소리를 구분하고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전 나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논문도 두 편이나 같이 쓴 도쿄대 심리학과 도시 하세가와 교수 연구진은 최근 고양이가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반려인들에게 자기 고양이한테 길이가 비슷한 단어 네 개를 동일한 억양으로 말한 다음 이름을 부르게 했다. 상관도 없는 단어들이 이어지자 점차 흥미를 잃어가던 고양이들이 자기 이름이 들리자 귀나 머리 혹은 꼬리를 움직이고 야옹 소리를 내기도 했단다. 혼자 있을 때는 물론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반려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불러도 반응했다고 한다. 윤이, 준이, 야야, 사샤, 점이, 까미, 너희 모두 네 이름 다 아는 거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