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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19]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바람아님 2019. 5. 1. 06:53
조선일보 2019.04.30.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한때 미술반원이었다. 비누 조각 숙제로 불상을 깎았는데 미술 선생님이 보시고는 곧바로 미술반으로 불러들이셨다. 당시 미술반에서는 유명한 예술가 이름을 따다 별명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와 조각하던 친구가 먼저 로댕을 가로챈 터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미켈란젤로 최'가 되었다.

2018년 6월에 나온 'Oil and Marble'이라는 소설이 있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 함께 살았던 두 천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애증을 그린 역사 소설이다. 왜 이런 소설이 진작에 나오지 않았을까 의아할 따름이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참 다른 사람이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주로 그림을 그렸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와 '다비드' 같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소설 제목은 직역하면 '기름과 대리석'이지만 '유화와 조각'으로 의역해도 좋을 듯하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외모, 성격, 사회 배경 모두 극명하게 달랐다. 비록 혼외 자식으로 태어났을망정 다빈치는 당대에 엄청난 성공을 거둬 풍요롭게 산 반면, 미켈란젤로는 삶을 연명하느라 끊임없이 작품에 매달려야 했다. 온화하고 세련된 다빈치와 달리 미켈란젤로는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게다가 다빈치는 그 자신이 완벽한 예술품이라고 칭송받던 그야말로 조각 미남이었는데 반해 미켈란젤로는 세상 기준으로 솔직히 추남이었던 걸 생각하면 왠지 조만간 할리우드 영화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는 5월 2일은 다빈치가 서거한 지 500년이 되는 날이다. 다빈치의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는 스승을 가리켜 "자연도 다시 창조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인물"이라고 떠받들었다. 동의한다. 나는 인류 역사에 다빈치보다 더 탁월한 천재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왜 다빈치의 날에 자꾸 미켈란젤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일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