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도 유학생이 포항공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는 기사(본지 2019년 4월 27일)를 읽었다. 외국인을 따뜻하게 품어준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출마했는데 정작 당선되고 나니 지난 5년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인종차별적 비난이 쏟아지더란다.
나는 미국에서 15년이나 살았지만 인종차별을 별로 겪지 않았다. 물론 눈빛 차별은 있었지만 언어폭력이나 행동 린치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92년 내가 미시간대 교수로 임용되자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돌변했다. 이메일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지라 팩스로 소식이 날아들었다. 축하 메시지인 줄 알고 받아 든 종이 위에는 뜻밖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네가 우리보다 탁월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다. 너는 소수민족 할당제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대체로 익명이었지만 그중 몇은 이름을 밝히고 사인까지 해서 보내왔다. 학회에서 만나면 맥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학문을 논하던 동료였는데. 대학 본부에 내가 진정 할당제로 임용되었는지 확인해보았다. 당연히 절대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그때부터 내게는 하염없이 창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얼마 전 내가 총괄편집장을 맡아 편찬한 동물행동학 백과사전이 출간됐다. 사실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존재감도 없는 나라의 학자이지만 영입할 때는 간이라도 빼어 먹일 듯하던 출판사 편집장들이 첫 편집회의에서 보인 행동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회의를 시작한 지 30분이 넘도록 분야별 편집장들에게 자기들이 직접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뿐 나는 그야말로 투명 인간이었다. 내가 동물 복지 분야의 편집장으로 모신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총괄편집장이 있는데 너희들 무슨 짓이냐?"고 질책한 후에야 나는 회의를 주재할 수 있었다.
불쌍하거나 평범하면 동정의 은혜를 입지만 당당하거나 탁월하면 곧바로 정을 맞는다. 지구촌민이 되려면 우린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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