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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17]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바람아님 2019. 4. 17. 08:11
조선일보 2019.04.16.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학창 시절 생물학을 전공한 이는 모두 채집 여행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전국 어디든 흰 천을 내걸고 그 뒤로 파장이 긴 자외선 전구만 매달면 어디선가 곤충들이 날아와 바글바글 들러붙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깊은 숲에서 밤새 기다려 본들 큰 흰 천 위에 군데군데 점 몇 개가 찍힐 뿐이다.

차를 몰고 지방에 다녀온 이튿날 차 앞 유리에 즐비했던 곤충들의 장 파열 흔적을 기억하는가? 곤충 혈흔은 제법 힘줘 솔질해야 겨우 닦인다. 예전에는 도심에서도 여름 밤 골목 어귀 가로등마다 나방과 날파리가 연신 머리를 처박곤 했다. 그 많던 곤충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우리의 이런 일화적(逸話的) 관찰을 뒷받침하는 논문이 나왔다. 국제학술지 'Biological Conservation (생물 보전)' 2019년 4월 호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 안에 세계 곤충종의 40%가 사라질 것이란다. 나비와 나방, 벌목 곤충, 그리고 쇠똥구리가 특별히 위험하다. 물속에서는 잠자리, 강도래, 날도래, 하루살이 등이 취약하다. 하버드대 곤충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표현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곤충의 멸종 속도는 척추동물의 멸종 속도보다 무려 여덟 배나 빠르다. 해마다 곤충의 생물량(biomass)이 2.5%씩 줄어들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100년 안에 지구에서 곤충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덩치 큰 동물이 사라지는 것에 정신이 팔렸는데 알고 보니 작은 곤충들이 더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지구 역사에는 대절멸 사건이 다섯 차례 있었다. 지금 제6 대절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 끝나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생산자인 식물의 몰락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사라지며 거기 승선한 곤충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