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20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살인범·불륜 만남 사이트 대표 등 독특한 이력 가진 사람들 만나 "도덕은 무엇이냐" 물어
나라·세대·환경에 따라 바뀌는 도덕의 다양한 내면 풍경 보여줘
예의 바른 나쁜 인간
이든 콜린즈워스 지음|한진영 옮김|한빛비즈|324쪽|1만6800원
미국 출신 여성 경영인인 저자는 사업차 중국에 머무는 동안 중국인의 도덕 기준이 서양과 다르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계약서가 유효한지 의심스러운 상황을 자주 목도했고, 중국인들이 지닌 도덕적
상대주의의 파렴치함도 경험했다. 그런데 도덕의 잣대가 나라에 따라서만 다른 걸까.
저자는 세대, 성별, 환경에 따라 도덕이 인간 내면에 어떻게 자리 잡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도덕은 무엇이냐?"고 묻기 위해 독특한 인생 이력을 가진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났다.
어윈 제임스는 두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고, 노엘 비더만은 불륜 만남을 주선하는 애슐리매디슨 전 대표다.
내부 고발자가 된 기업 CEO, 퇴역한 공군 장성도 만났다. 이 책은 그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 희랍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이 운명이다'라고 했다.
살인을 저지를 만큼 성질 더러운 인간도 타고나는 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자는 영국인 살인 전과자 제임스를 만났다.
극도로 가난했고 어려서 버림받았으며 자질구레한 범죄로 얼룩진 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24세에 사람을 죽이고
신분을 세탁한 뒤 영국을 탈출해 프랑스 외인부대에 숨어들었다. 규율이 뭔지 몰랐던 그에게 군 생활은 도덕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육체와 정신의 극한을 넘나드는 훈련은 연대 의식과 충성심을 일깨웠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헌신도 체험했다. 아프리카 작전 지역에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순찰에 나선 그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 '나야말로 질서를 어긴 인간 아닌가?' 괴로워진 그는 죄를 털어놓았고 20년 넘게 복역했다.
그는 저자에게 "도덕에 대해 배우고 나서야 과거에 저지른 짓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임스의 고백을 들으며 저자는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환경이나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을 새삼 느낀다.
로마 황제 네로는 어머니마저 살해한 폭군이지만 자신은 시민과 예술을 사랑한다고 여겼다.
그림은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 네로는 고의로 로마를 불태웠다는 의심을 받게 되자
기독교도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또 다른 인터뷰 대상인 신경과학자 크로켓은 "인간의 명예심은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타인을 순수하게 좋아해서라기보다 그래야 평판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타인에게 주는 게 중요한데,
그런 확신을 주는 최선의 방법은 먼저 나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악당들조차 '나는 선량하다'고 착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구제 불능 인간에게도 명예심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폭군이면서 서민을 사랑한 예술가 군주를 자처한 로마 황제 네로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광학기기 제조 업체인 올림푸스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가 쫓겨난 영국인 마이클 우드퍼드의 사례는
나라마다 다른 도덕 개념을 보여준다. 내리막길을 걷던 올림푸스에 2011년 CEO로 취임한 우드퍼드는 회사가 17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사기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밝혀내고 외부에 알렸다.
정의를 실현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장직 박탈. 폭로 이후 올림푸스 주가가 80% 폭락하고 70조달러가 증발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명예에 대한 일본인의 개념은 서양과 달랐다.
우드퍼드는 "(일본에선) 비리 공개보다 기업 보호가 더 높은 소명이고 그것을 따르는 게 선"이라고 말했다.
불륜 알선 사이트 애슐리매디슨 대표와의 인터뷰는 도덕과 윤리와 법이 각각 따로 놀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사이트는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지만, 간통죄가 없는 나라에선 불법이 아니다.
이 사이트가 비난을 산 것은 미풍양속을 해쳐서가 아니라 고객 정보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해커들의 폭로로 인해 불륜 사이트 회원임이 드러난 목사가 자살하자 회사 대표가 사임했다.
목사는 도덕적 지탄에 무너졌고, 회사 대표는 기업 윤리 문제로 발목 잡혔다.
1년에 걸친 도덕 탐색은 저자 표현에 따르면 '성과 없이' 끝났다. 애초에 결론을 도출하기 힘든 테마다.
그런데도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주어서만은 아니다.
이런저런 도덕적 문제 한두 개쯤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책 속 사연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원제: Behaving Ba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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