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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파리, 방화·폭격 겪은 영국·독일 대성당의 위로

바람아님 2019. 4. 22. 08:56

중앙일보 2019.04.21. 01:02

 

노트르담 역사 빼닮은 유럽 고딕 성당
요크, 잦은 화재에도 유물 보존 철저
쾰른, 2차 대전 피해 70년째 복구 중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언제쯤 옛 모습을 되찾을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5년 안에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최대 40년이 걸린다는 전망도 나왔다. 성당 복구 과정에는 영국 요크 대성당과 독일 쾰른 대성당 재건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마침 이달 초 들른 영국과 독일에서 두 성당을 방문했다. 노트르담 대성당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요크·쾰른 대성당도 비슷한, 어쩌면 훨씬 처참한 역사를 겪었다. 부활절인 오늘, 숱한 사고와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두 성당에서 노트르담의 미래를 본다.
독일 쾰른 대성당 안,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최승표 기자

500년간 보존된 스테인드글라스-요크 대성당
영국 북동부 요크시에는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이 있다. 잉글랜드 성공회에서 캔터베리 다음 가는 지위의 ‘요크 대성당’이다. 고대 로마가 영국 땅을 지배하고 기독교를 국교화한 뒤 지금 요크 중심부에 작은 교회가 들어섰다. 로마가 쇠락한 뒤 요크 지역을 점령한 바이킹과 앵글로색슨족 역시 그들의 교회를 지었다. 지금의 고딕 성당은 1230년대부터 건축을 시작해 1472년에서야 완공됐다. 요크셔 지방의 마그네시안 석회석으로 교회를 지었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이때 만들었다.
영국 요크 대성당은 13세기 요크셔 지방의 마그네시안 석회석으로 건축했다. 영국식 고딕 건축의 절창으로 불린다. 최승표 기자
스테인드글라스 대부분은 지금까지 보존됐지만 교회는 숱한 시련을 겪었다. 16세기 잉글랜드 성공회가 출범하면서 로마 가톨릭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성공회는 가톨릭 주교의 무덤, 제단, 창문 등을 제거했다. 1829년에는 방화 사건으로 성당 동쪽 부분이 심하게 파괴됐다. 1차 대전 때는 독일 폭격기가 요크를 공격했는데 성당은 폭격을 피했다. 성직자들이 200만 개에 달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을 모두 뗐다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1984년에도 원인 미상의 화재로 지붕 상당수가 소실됐다. 88년 마무리된 복원공사에 250만 파운드가 들었고, 2007~2018년 이어진 추가 보수 공사에는 2300만 파운드를 썼다.
요크 대성당 내부에 있는 장미 문양 스테인드 글라스. 중세 때 만들었다. 최승표 기자
요크 대성당은 방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에 로마시대 유적이 가득하다. 1960년대 우연히 발굴한 로마 군대의 유물부터 중세 주교의 관 속에 있던 성물 등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275개 계단을 걸어 오르면, 72m 높이의 성당 탑 꼭대기에 닿는다. 성벽을 걸으며 바라보는 도시도 아름답지만 성당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훨씬 압도적이다. 키 작은 갈색 건물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모습이 중세시대 그대로다. 교회가 도시를 보듬고 사는 것만 같다.
요크 대성당 탑 꼭대기서 내려다본 요크 구시가지. 최승표 기자

지워지지 않는 그을음-쾰른 대성당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 폭격기 1000여대 쾰른 상공을 덮쳤다. 도시는 쑥대밭이 됐고 쾰른시민 6만 명이 이상이 숨졌다. 영국군은 700년 역사를 간직한 쾰른 성당을 직접 타격하지 않았지만 화력이 무시무시한 소이탄 때문에 성당은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성당 지붕과 창문, 수백 년 묵은 교회 유물이 훼손됐고 시커먼 그을음이 성당 전체를 뒤덮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딕 건축은 그 자체가 사람을 압도하는 아우라를 풍기는데 쾰른 대성당은 2차 대전 때 생긴 그을음 때문에 더 기묘한 분위기를 낸다. 최승표 기자
쾰른 대성당은 중세 고딕 성당의 백미로 꼽힌다. 1280년대부터 시작한 건축은 1880년이 돼서야 끝났다. 압도적인 성당 규모를 보면 6세기 동안 이어진 대공사가 이해된다. 탑 높이가 무려 157m, 성당 전면부 면적이 축구장 크기에 맞먹는 7000㎡에 달한다. 무려 30만t의 석재를 썼다고 한다. 이처럼 대규모 성당을 지은 건 중세 때 밀라노에서 가져온 동방박사의 유골함 때문이었다. 금박을 입힌 유골함을 보기 위해 12세기부터 수많은 순례객이 쾰른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한 해 600만 명이 찾아온다. 유네스코는 1996년 쾰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라인강에서 바라본 쾰른 대성당. 높이가 157m에 달하는 성당은 도시 어디서나 잘 보인다. 19세기 말,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이었다. 최승표 기자
성당 안에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찾아온 장면을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최승표 기자
성당 외관은 금방 화재를 입은 듯 시커멓지만 내부는 전쟁 전처럼 깔끔하고 화려하다. 도시가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는 동안에도 성직자들이 동방박사의 유골함 같은 진귀한 유물과 중세 때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는 따로 보관했다고 한다. 지하에 매장하거나 모랫더미에 덮어두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쾰른 대성당도 탑 꼭대기에 올라볼 수 있다. 533개에 달하는 비좁은 계단을 걸어 오르면 다리가 풀리고 머리가 핑 돈다. 탑 전망대에서는 그을음과 산성비로 온통 시커메진 성당의 상처가 더 잘 보인다. 성당 측은 한 해 예산 1000만 유로(127억원) 중 약 70%를 복구비에 쓴다고 한다.
쾰른 대성당 탑 꼭대기서 내려다본 도시 모습. 2차 대전 때 생긴 그을음이 교회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다. 영국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가 재건된 도시는 단정한 모습이다. 최승표 기자

요크(영국)·쾰른(독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