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22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작년 美 벤처 투자 147조 달해… 인재·돈 몰리며 대기업 위협
美 벤처기업 상장 때 80% '적자'… 일시적 손해 나도 빠른 성장 추구
'싫든 좋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우습게 여겼다간 변화에 휩쓸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스타트업 열기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다. 1990년대 말 닷컴 붐을 능가하는 분위기다.
2018년 미국의 벤처투자 금액은 147조원에 달해 2000년 닷컴 거품 때를 능가했다.
한국도 지난해 약 3조4000억원의 기록적인 벤처투자액을 기록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로 급성장을 추구하는 신생기업이다.
이들에게 벤처투자자들이 거액을 투자하면서 대기업의 비즈니스를 위협하는 세상이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면 변화에 뒤처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면서 오해하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다.
스타트업은 곧 망할 수 있고, 정부 지원에 기대서, 대기업이 안 들어가는 작은 사업을 하는 회사라는 생각이다.
또 대기업에 취직 안 되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으로 간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대기업 취직 안 되는 사람들? 삼성전자·억대 연봉 컨설턴트 출신 인재 수두룩
요즘 삼성전자 출신으로 창업 전선에 나선 인재가 수두룩하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창업한 토스의 이승건 대표나
수억 연봉 컨설턴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창업한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 등 수많은 인재가 스타트업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네이버 같은 기업의 톱 인재들이 창업한 회사도 수두룩하다. 얼마 전에는 네이버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송창현씨가 창업한 스타트업에 현대자동차가 투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타트업이 매출을 올려봐야 얼마나 올리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음식 배달 서비스 '배달의 민족'을 제공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31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4~5년 전만 해도 그까짓 음식 배달 앱으로 돈을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냐는 시각이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은 음식 배달 시장에서 세계 5위권의 큰 시장이었다.
모텔 중개 플랫폼을 제공하는 야놀자는 1885억원, 신선식품 새벽 배송 시장을 만들어낸 마켓컬리는 15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큰 투자를 필요로 하고 성장은 느린 기존 전통 기업보다 온라인에 기반한 스타트업이 한번 터지면 엄청난 고속 성장을 하는
시대다.
수백억, 수천억씩 적자? 빠른 성장 위해 '선택한' 성공 방식
수백억,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스타트업의 손익계산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다.
'부실기업 아니냐'는 것이다. 요즘 스타트업 성장 공식은 적자를 내더라도 빠른 성장을 택한다.
적자는 성장을 위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물론 건실하게 경영해서 성장보다 흑자가 나는 것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 시대에 그랬다가는 더 많은 돈을 투자받은 경쟁사에 순식간에 시장에서 밀려나 버릴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적자상태 기업의 상장이 2000년대 IT 거품기 이후 최대치로 올라 80%에 이른다.
증시 상장 5개 기업 중 4개는 적자다.
얼마 전 상장된 승차 공유업체 리프트는 역사상 최고치인 1조원이 넘는 적자를 가지고 상장했다.
지난 3년간 10조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가진 우버도 100조원이 넘는 기업 가치로 오는 5월에 상장 예정이다.
이들이 부실기업인지 아닌지는 결국 시장이 판단할 것이다.
스타트업의 사업 영역에 대기업이 들어오면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죽기 살기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을 안정지향적 월급쟁이 직원들이 주축이 된 대기업이
이기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벤처투자자의 거액 투자를 받아 적자를 감내하고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이기기는 더욱 어렵다.
교보문고, 예스24, KT, 네이버 등 대기업이 뛰어든 전자책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리디북스가 좋은 사례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온라인 배송 도전자들의 성장에 대형 마트들의 매출은 7년째 마이너스다.
첨단·혁신 기술만 개발?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 고성장 추구
스타트업은 인공지능, 로봇, 드론, 클라우드, 블록체인 같은 뭔가 첨단 혁신 기술만 개발하거나 예전에 아예 없던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도 많다. 온라인으로 특정 물건을 파는 스타트업이나 음식 배달 스타트업 등을 보고
"그게 무슨 스타트업이냐"며 폄하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풀면서 고성장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그 푸는 방법이 꼭 첨단 기술일 필요는 없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
리멤버라는 명함 관리 앱을 만드는 드라마앤컴퍼니라는 회사는 스캔한 명함을 정확하게 입력하기 위해서
자동 인식 기술보다 사람이 일일이 명함을 보고 쳐서 입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랬더니 "스타트업이 기술로 문제를 풀지 않고 무슨 가내 수공업을 하느냐"는 비난이 나왔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첨단기술을 써서 고객 외면을 받기보다 원시적인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이제는 250만이 넘는 고객을 확보했고 다양한 자동화 방법을 통해 명함 입력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마켓컬리는 좋은 신선식품을 선호하는 직장 여성들이 낮에 집에서 식품 배송을 받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마켓컬리가
고른 품질이 뛰어난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배송해주는 샛별 배송을 시작해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스타트업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들이 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런 스타트업은 급성장을 해서 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싫든 좋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미래의 일자리는 이런 새로운 기업들이 만들어낸다.
별것 아니라고 스타트업을 우습게 여기다가는 그런 스타트업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휩쓸려 버릴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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