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4.11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중국 제조 2025'는 '세금 낭비'… 중국 前 재정부장 공개비판
전제 국가서도 목소리 내는데 우리 경제 관료는 권력 눈치만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달 양회(兩會) 때 '중국 제조 2025'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첨단 기술 산업에 정부 자금과 정책 지원을 쏟아부어 2025년까지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이 정책은 2015년 리 총리 주도로 만들어졌다.
작년까지는 빠짐없이 총리 정부 업무 보고에 들어 있었다.
미중 무역 전쟁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중국이 이 정책을 집행하면서 국유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기술 절도, 외자 기업 기술 이전 강요 등
반칙을 쓰고 있다고 본다. 무역 전쟁 타결이 급한 시점에 다시 이 정책을 거론해 미국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더 큰 내부적 요인이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내에서도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경쟁력 떨어지는 국유 기업에 돈을 퍼부어 인위적으로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양회에 참석한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재정부장(재정부 장관)은 "세금 낭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첨단 산업의 추세는 예측이 아주 어려워 수년 안에 모든 게 바뀌기도 한다"며
"이런 불가측한 분야를 정부가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정책은 적잖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전기차만 해도 각 지방정부마다 보조금을 줘가며 고만고만한 업체를 키우다 보니 기술 발전이 이뤄지기도 전에
벌써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베이징의 국유 기업 BOE는 비효율의 대명사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년간 수십조원을 지원해 이 회사를 세계 1위 LCD(액정 표시 장치) 업체로 키워냈다.
밑도 끝도 없이 돈이 들어가 중국 언론이 '돈 태우는 기계'라고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BOE는 지금도 정부 보조금 없이는 제대로 이익을 못 낸다. LCD는 겨우 한국을 추격하는 데 성공했지만,
차세대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까지 따라잡으려면 또 얼마나 돈을 많이 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게 중국 당국의 고민이다.
러우 전 부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내 시장주의자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으로 본다.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첨단 산업 발전을 주도하도록 해야 했다는 것이다.
통신 기기 분야의 화웨이,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 등 기술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은
모두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민영 기업 아니냐는 주장이다.
러우 전 부장은 리 총리 1기 내각의 일원으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재정부장을 지냈다.
그런 인물이 세계의 이목이 쏠린 양회에서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30년 경력의 경제 관료로서 갖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전제 국가라고 할 정도로 사상 통제가 강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시장주의자들의 비판을 용인하고,
정책에도 반영한다. 경제를 이념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러우 전 부장은 이 발언으로 퇴임 후 맡아온 전국사회보장기금 이사장직에서 해임됐지만,
그가 비판한 중국 제조 2025 정책은 재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훨씬 더 민주화돼 있고, 경제 발전 경험이 풍부한데도 상황이 정반대이다.
소득 주도 성장과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은 이미 일반 국민도 다 알 정도가 됐지만,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한 이 정부 경제 관료 중에 분명하게 '노(No)'라는 말 하는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시 '부총리 패싱'이라는 말이 나오면 직을 던질 각오가 돼있다던 홍 부총리 말은 공염불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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