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를 거쳐 민간 정보회사 ‘스트랫포’ 부사장을 지낸 미국의 젊은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이 쓴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선 셰일 혁명 이후의 미국과 세계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선 셰일 혁명이 셰일가스 채굴에 적합한 지형에 미국 특유의 기업가 혁신 정신이 어우러져 발생한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인 점을 표나게 강조하고 있다. 자이한은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자급자족 체계를 갖추게 된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급격히 잃어갈 것이며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한때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 미국이 없는 듯한 국제사회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이한이 말한 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파리기후협약 탈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 등 국제사회에 등 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자이한의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 북미 대륙으로 파고들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좌파 성향의 독재 국가들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이들 국가의 에너지 수급 관리를 주요 제어 기제로 활용해 눈길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새 가스관 ‘노르드스트림2’를 꼬집으며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며 비난했다. 이후 독일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들여오기로 결정하고 함부르크에 LNG 터미널을 건설하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이란과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 금지 조치에 나서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미 붕괴 직전이고 이란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4월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3.9%, 올해는 -6%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타격이 심각하다.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 가운데 이란산 원유는 약 6%를 차지하고 있다. 양도 양이지만 중국이 영향력 확대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역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는 중국이 돈과 정성을 들여온 남미의 거점 국가이고 이란을 뺀 일대일로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란은 일대일로의 핵심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예외 중단 조치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지만, 감정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한창 불붙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진땀 흘려 가며 미국을 대해야 하는 처지에 자기주장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셰일가스발(發) 세계의 에너지 안보 지형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주요 에너지 관련 정책 가운데 하나가 북한을 경유한 러시아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도입 추진이었다. 왜 이 시점에?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식견이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yo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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